전국의 기업 현장에는 수많은 '품질분임조(Quality Circle)'가 있다.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일과시간 전후에 품질혁신 활동을 하는 소규모 조직이다.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개선할 과제를 선정하고 활동 계획을 수립한 후 현상 파악, 원인 분석, 목표 설정, 대책 수립 및 실시, 결과 분석, 효과 파악, 표준화, 그리고 사후 관리까지의 활동을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품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이상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품질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활동은 과학적인데, 분임조들이 그간의 성과를 발표하고 수상자를 정하는 경진대회는 굉장히 재미있다.
10명 내외의 분임조 전원과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석한 노조위원장 및 부서 팀장들이 분임조의 구호(예를 들면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도전!")를 당차게 외친 후 그간의 활동 및 성과를 파워포인트로 설명한다.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탄소중립, 안전, 스마트팩토리, 고객만족 등으로 다양하며 활동과 성과를 데이터로 분석해 발표한다.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표정에서는 자랑스러움이 읽힌다.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라는 애정이 드러난다.
1960년대에 도입된 품질분임조는 현장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문제 해결과 참여 문화를 확산시켰다.
산업화 과정부터 현재까지 누적 6만2000개의 분임조, 61만명의 근로자가 참여해 우리 산업의 성장과 혁신을 견인해왔다.
대한민국의 품질은 그렇게 진화해왔다.
오늘날의 품질은 단순히 결함 없는 제품을 넘어 고객가치 실현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및 AI 기술과 접목해 고도화된 품질경영 체계로 진화하며, 머신러닝과 고객관계관리 시스템을 통해 고객의 구매 이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맞춤형 서비스와 제품을 제안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존의 ISO9001(품질경영시스템)도 AI, 원격 업무, 디지털 프로세스, 고객경험, 윤리, 품질문화, 신기술 등을 반영해 개편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각국에서도 디지털 품질경영은 주요 과제다.
특히 중국은 2023년 '품질강국 건설 개요'를 수립하고 정부 주도의 전략적 품질경영을 통해 질적 도약을 지향하고 있다.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서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어 품질 선도국이던
우리로서는 위기의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품질경영은 민관이 함께 추진해야 할 과제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품질혁신위원회'를 설립하며 '품질의 삼성'이라는 명성을 재정립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TSMC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사례처럼 자생적 품질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정부는 '디지털 혁신을 통한 품질강국 실현'(제6차 품질경영 종합시책)을 위해 디지털 품질경영 체계 확산과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등 핵심 기술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소기업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의 디지털 전환과 품질 고도화를 위한 지원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8월 하순 제51회 국가품질혁신경진대회가 제주에서 열린다.
지역예선을 통과한 300여 개 분임조가 본선에서 열띤 경쟁을 펼친다.
품질혁신을 주제로 하는 축제의 장이다.
자발적인 참여로 생산 현장에서 품질혁신에 진력하고 있는 우리 근로자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기술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결국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품질에 있다.
다시 '품질'이고, 지금은 디지털 품질경영 시대다.
[문동민 한국표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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