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강대에서 열린 '생각의 창: AI 반도체로 세상을 삼킨다'란 주제의 특별강연에서 연사로 나선 박철민 삼성전기 상무(왼쪽)와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김호영 기자

"새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새 정부의 AI 정책에 따라 여러분의 운명,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뀔 것입니다.

"
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의 백준호 대표와 삼성전기의 박철민 상무는 대선을 한 주 남겨둔 지난달 27일 서강대에서 열린 '생각의 창: AI 반도체로 세상을 삼킨다'란 주제의 특별강연에 참석해 대한민국 AI 산업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전했다.

이 강연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진행을 맡았으며, 차정훈 전 중소벤처기업부 실장 등이 패널 토론에 참여해 학생들과 AI 국가경쟁력에 대해 논의했다.


백 대표는 자신의 학창 시절과 창업 여정을 소개하며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대학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컴퓨팅 비욘드 실리콘' 여름학교에서 양자·DNA·분자 컴퓨팅을 접한 경험을 소개하며 "오히려 이 캠프를 통해 실리콘 기반 컴퓨팅을 더 깊이 연구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AMD 보스턴 중앙처리장치(CPU) 디자인팀에서 인턴십을 경험하고, 삼성전자에서 현업 경험을 쌓으며 실력을 키웠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결국 현장에서의 경험이 진짜 밑거름이 된다"고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세계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AI 반도체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유에 대해 백 대표는 "AI 컴퓨팅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패널 토론 중 박 전 장관이 "메타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물을 때도 그는 망설임 없이 "우리는 스타트업이다.

실패를 기본 전제로 시작하지만, 가장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높은 목표를 전략적으로 설정해 나아가는 것, 그게 우리의 미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 대표는 "5년 뒤 생태계를 생각했을 때, 여전히 전체 생태계가 엔비디아에 독점적으로 장악된다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모멘텀이 올 때 퓨리오사AI도 그 흐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사들은 대한민국의 AI 컴퓨팅 파워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의견을 같이했다.

박 전 장관은 "AI의 3대 요소(알고리즘, 컴퓨팅 파워, 데이터) 중 컴퓨팅 파워에 대한 문제가 최근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백 대표는 "AI 컴퓨팅을 효율화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은 AI 산업 전체를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북미의 빅테크 4개 기업이 AI 컴퓨팅 인프라에 연간 400조~500조원을 투자하고 있다"며 "모든 기업이 엔비디아에 운명을 맡기려 하지는 않는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인프라를 내재화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백 대표가 말하는 북미 빅테크 4개 기업인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는 올해 총 3200억달러(약 439조원)를 AI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상승한 수치다.


컴퓨팅 파워의 필요성에 박 상무도 동의하며 "인프라스트럭처는 크게 발전할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밀어주는 끈기가 필요해, 정부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 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투자 전략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차 전 실장은 삼성전자가 2016년 엔비디아의 쿠다(CUDA) 라이선스를 거절했던 일화를 언급하며 "대통령, 장관 등 정부와 기업인들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으면 100조원을 써도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사들은 이러한 국가적 투자를 통해 균형 잡힌 AI 생태계 역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

박 상무는 "대한민국이 AI에서 뒤처져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는 등 분명한 능력을 갖춘 나라"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를 믿고 함께 생태계를 형성할 스타트업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백 대표 또한 "우리가 잘하는 영역도 있지만, 담대하게 도전해야 할 영역도 있다.

종합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며 "언어모델, AI 애플리케이션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스스로 한계를 지레 설정하지 말고, 과감하게 투자하고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종합적인 AI 생태계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스타트업의 중요성을 다시금 역설했다.

그는 "지금 AI 알고리즘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들 대부분은 스타트업"이라며 오픈AI, 딥시크, 앤스로픽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세계적인 이들 스타트업이 파괴적인 결과를 낼 때 그 팀의 규모는 150~200명 수준이었다"며 "적절한 인재와 자금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토론에서는 종합적인 생태계 측면에서 '소버린 AI'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박 상무는 "최근 중동 국가들이 자국 데이터와 문화를 반영한 독자적 AI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며 "우리도 우리만의 가치와 환경을 반영한 AI 시스템, 즉 소버린 AI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AI 인프라와 알고리즘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는 구조가 기술 주권 확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차 전 실장도 "당연히 (소버린 AI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국가라는 형태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며 "대표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봐도 드론을 통한 공격 등에서 AI가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 역시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 청년들의 과제"라며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의 도전을 독려했다.


[안선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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