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산업 강국, 함께 하는 제조혁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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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소 삼성 스마트공장 위원(왼쪽)과 최수정 넥슨전자 부사장이 '비전 기반 무인 생산 자동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
고등학교 졸업 후 국내 대기업 외주 업체에서 일하던 최수정 씨는 당시 원도급 업체 금형팀에서 일하던 장용일 씨에게 창업을 제안했다.
1년간의 고민 끝에 두 사람은 500만원씩 출자해 창업센터에 설계사무소를 차렸고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가며 금형설계 용역 업무를 이어나갔다.
2년 뒤엔 30평짜리 임대 공장을 얻어 첫 기계를 들였다.
그렇게 성장한 설계사무소는 생산법인으로 전환됐고 장씨는 넥슨전자 사장이, 최씨는 부사장이 됐다.
넥슨전자는 반도체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0.3㎜ 남짓의 파인피치(미세 피치) 콘택트 핀을 만들기 위해 접고 구부리고 펼치는 수십 개 공정을 거친다.
기존에는 작은 기계 몇 대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반도체 패키지 검사에 쓰이는 초정밀 핀을 양산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공장 내부는 여전히 개선이 시급했다.
작업 공간은 비좁았고 정리정돈이 되지 않아 생산 효율이 떨어졌다.
릴 단위로 5만~6만개씩 감기는 핀은 검사 공정에서 오류가 나면 전량 폐기되기도 했다.
당시 공정 불량률은 최대 20%대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한계로 넥슨전자는 공장 확장을 본격 검토했다.
넥슨전자는 2000평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짓기 위해 용지를 물색했고 평당 150만원이던 용지 시세는 어느새 350만원으로 치솟았다.
투자 규모는 80억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실행팀과 협업하면서부터 이 계획은 멈췄다.
최 부사장은 "공장이 좁아 정리정돈만으로 더는 안 되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삼성 실행팀이 하나하나 바꾸고 나니 우리가 가진 공간 안에서도 훨씬 나은 방식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부사장은 이 과정을 '공간이 아니라 사고방식 문제였다'고 돌아봤다.
스마트공장 혁신 활동은 2023년 5월 말부터 약 두 달간 진행됐다.
삼성전자 내부 전문가 7명이 상주하며 제조 현장 곳곳을 점검하고 핵심 과제를 함께 발굴했다.
불량률 감소, 생산성 향상, 공간 효율화가 핵심 목표였다.
삼성이 제안한 첫걸음은 정리정돈이었다.
5S3정(공장 환경 개선) 원칙에 따라 모든 설비·자재·공구 위치를 새롭게 하고 불필요한 공정을 없앴다.
제품별로 뒤섞여 있던 릴 자재는 전용 랙으로 재배치됐고 금형 보관함에는 먼지 유입을 막기 위한 덮개가 설치됐다.
생산 현장 표준화 작업이 병행됐다.
작업자 간 명칭을 통일하기 위해 공정명, 설비명, 보관 구역 등을 명판에 적어 부착하는 방식으로 정비했다.
생산 전환 속도도 개선됐다.
기존에는 작업이 끝난 뒤 장비 세팅을 시작했지만, '내준비·외준비' 개념을 도입해 외부에서 미리 교체 작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바꿨다.
이로 인해 금형 교체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 47분에서 37분으로 단축됐다.
가장 큰 개선은 자동화 검사 시스템이었다.
기존에는 타발유 등 오일 성분 때문에 카메라가 핀과 오염물을 구분하지 못해 불량품을 양품으로 오인하거나 전체 릴을 폐기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삼성 측 조언으로 넥슨전자는 오일을 구분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비전 검사 장비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정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검사 단계에서는 자동 분리 장치도 도입됐다.
기존에는 불량이 발생하면 릴 전체를 분리하거나 폐기하는 방식이었지만, 불량 구간만 되감아 다시 검토·처리할 수 있는 전용 설비가 추가됐다.
이는 양품 오인 방지뿐 아니라 검사 재현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생산성과 품질은 동시에 올랐다.
시간당 생산량은 평균 9% 증가했고, 기존에 43평을 차지하던 작업 공간은 정리정돈만으로 17평으로 줄었다.
공정 불량률은 약 20%에서 10% 안팎으로 감소했다.
2000평 용지를 물색하며 고민했던 공장 확장 계획은 철회됐고 최 부사장은 "삼성이 80억원을 절약하게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수준 평가에서도 성과는 뚜렷했다.
사전 평가에서는 5단계 중 1~2레벨에 머물렀지만, 혁신 활동 후에는 3레벨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이번 활동을 통해 현장 개선 과제가 29건 발굴됐고 그중 28종, 96대에 이르는 개선 도구가 현장에서 자체 제작됐다.
현장 개선 활동은 생산성 외에 자율 관리 문화 조성 측면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담당자가 직접 개선을 제안하고 실현하는 자발적 참여가 늘어난 것이다.
업무 동선을 단축하고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는 과정을 거치며 '내 일터를 내가 바꾼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글로벌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넥슨전자는 2024년 중국에 처음 수출을 시작했고 일본·대만 기업들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특히 2025년 글로벌 파인피치 수요가 0.3㎜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넥슨전자는 더 미세한 제품을 양산하는 기술력도 갖춰나가고 있다.
[양산 박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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