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사상 첫 여성 사내이사 진은숙 부사장
KT·
NHN 거친 ICT 전문가
수학 좋아해 개발자 길 걸어
취미는 직소퍼즐·오목두기
일 막히면 지금도 직소퍼즐
車는 플랫폼 비즈니스 채널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 활용
품질·고객만족 끌어올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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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 현대자동차 부사장. 2025.4.9 [사진 = 한주형 기자] |
가장 좋아한 장난감은 큐브였다.
취미는 직소퍼즐 맞추기와 오목 두기. 지난달 20일 현대자동차의 첫 여성 사내이사로 선임된 진은숙 정보통신기술(ICT) 담당 부사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9일 방문한 진 부사장의 서울 양재동 사무실 한편에는 완성된 5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골치 아픈 업무를 맡았을 때 틈틈이 만들어 완성한 퍼즐이다.
진 부사장은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고, 퍼즐 풀이를 즐겼다”며 “아무 생각 없이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끙끙대면 다른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진 부사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 왔다.
수학을 잘해 여중·여고 시절에는 학교에서 별명이 ‘수학의 여왕’이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에 진학한 진 부사장은 “당시 계산통계학과는 1학년 때 통계와 컴퓨터 사이언스를 함께 배우다 2학년 때 전공을 찾아가는 시스템이었는데, ‘취직이 더 잘된다’는 말에 혹해 컴퓨터 사이언스를 택했다”며 “수십 년에 걸친 개발자 인생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에서 전산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국통신(현 KT)에 취업했다.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여성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진 부사장은 취업 후 2달 만에 덜컥 결혼해 이듬해 출산을 하게 되었다.
진 부사장은 “아이를 낳고 보니 ‘내가 그동안 직장, 친구, 돈, 명예, 가족 등 모든 것을 다 잘 챙기려고 무리한 저글링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돈, 명예는 고무공이라 떨어뜨려도 다시 주우면 되지만 가족은 유리공이라 한번 떨어뜨리면 끝이다’라는 생각에 가족을 가장 우선적으로 챙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자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아침, 저녁은 무조건 함께 먹었다.
그는 “저녁에 회식이 갑자기 잡히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회사에 일주일 전에 공지하지 않은 회식에는 참석하지 못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을 만큼 당돌한 직원이었다”고 웃었다.
다행히 KT나 2006년 입사한
NHN이나 모두 진 부사장의 이런 결정을 지지해 줬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여러 회사를 거치는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KT와
NHN에서는 여러 가지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NHN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끝으로 휴식을 위해 잠시 쉬고 있던 2021년
현대차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엔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에 고사했다.
진 부사장은 “그러던 중 지금까지 PC, 스마트폰이 이끌던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의 채널 역할을 앞으로는 자동차가 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에 설득됐다”며 “내가 쌓아온 정보기술(IT) 지식과 경험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현대차에 기여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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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첫 여성 사내이사인 진은숙 부사장이 9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
현대차 ICT혁신본부의 구체적인 업무를 묻자 ‘건물 공사’에 비유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건물을 높게 지으려면 땅을 깊게 파야 한다”며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 본부가 건물을 높게 올리는 작업을 하는 거라면 반면 ICT 본부는 땅을 깊게 파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수집한 수많은 데이터를 한데 모으고 분석해 활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생산현장과 판매현장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을 개량해 제품 품질과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업무, 데이터를 보관하는 서버 등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업무 등이다.
현재 중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는 ‘차세대 자원관리(ERP) 개발’과 ‘고객 채널 통합’ 두 가지다.
진 부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현대차 사업장의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시스템을 통합하는 작업과 더불어 여러 개로 나뉜 고객용 애플리케이션도 통합하려 한다”며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시스템을 목적에 맞게 통합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3위 자동차 기업의 여성 사내이사가 된 소감을 물었다.
진 부사장은 “회사에서 30년, 40년을 헌신하신 분들도 굉장히 많은데 사내이사로 선임돼 어깨가 무겁다”며 “제가 가진 IT 경험이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아 사내이사로 선임됐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사내이사로서 임직원들과 주주가 기대하는 IT 혁신을 꼭 이뤄내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낀다”며 “지금까지는 맡고 있는 본부의 업무에만 신경 썼다면 앞으로는 IT 영역에서의 모든 의사 결정이 회사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해 올바른 의사 결정에 도움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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