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삼성 제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여태껏 한번도 쓰지 않은 물건이 있다.

다름 아닌 갤럭시폰이다.

이야기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1월, 필자는 스티브 잡스를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그곳에서 당시로서는 정말 진기한 경험을 했다.

애플 직원이 필자의 손에 아이폰 샘플을 쥐여줬다.

그러더니 처음 방문한 샌프란시스코 어딘가에 필자를 남겨두고는 알아서 스탠퍼드의 한 스타벅스 매장을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구글 지도에 주소를 입력하자 길 안내가 시작됐다.

신기한 여정은 약 15분 만에 끝났다.

또 한 가지, 아이폰으로 여러 사진을 찍어뒀는데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왼쪽으로 휙 넘기니 다음 사진이 나타났다.

지금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한 달 후 삼성전자 정보통신 최고위 임원과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샌프란시스코 경험담을 전했다.

삼성도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견해를 곁들였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필자의 말이 틀렸다고 단언했다.

"남 기자, 블랙베리 알지? 인기 있는 스마트폰이지만 대중화엔 실패했어. 스마트폰과 일반 휴대폰은 시장이 완전히 달라."
당시 '일반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은 노키아를 바싹 추격하고 있었다.

세계 1위가 머지않았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의 탄생을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6개월이 흘렀다.

국내 통신사인 KT가 아이폰을 들여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삼성에 비상이 걸렸다.

삼성폰을 KT에 주지 않겠다는 압박이 쏟아졌다.

하지만 KT는 아이폰 도입을 강행했다.

삼성은 부랴부랴 옴니아폰으로 맞불을 놨지만 망신만 당했다.

이후 삼성은 갤럭시폰으로 힘겹게 자존심을 회복했다.


갤럭시를 볼 때면 이 기억이 늘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휴대폰을 바꿀 시기가 와도 선뜻 갤럭시에 손이 가지 않는다.


이 일화는 기업인의 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삼성은 단 18개월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또 하나의 실패 사례가 있다.

2006년 잡스는 당시 인텔 CEO였던 폴 오텔리니를 찾아갔다.

휴대폰에 PC를 넣을 생각이니 모바일용 고성능 칩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오텔리니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만약 인텔이 잡스의 부탁을 들어줬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PC 시대 반도체 최강자 인텔이 모바일 시대에도 그 명성을 이어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인텔은 몰락했다.

그 자리를 엔비디아가 대신했다.


국내 유통업 2위 홈플러스가 추락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통찰력도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

그는 막대한 돈을 빌려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알짜 점포를 팔고 이를 다시 임대해 영업을 이어갔다.

점포를 판 돈으로 충분히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하지만 장사가 안되자 임차료를 못 낼 지경에 이르렀다.

기존 부채를 갚는 일도 어려워 보인다.


통찰력이란 '사안을 꿰뚫고 앞날을 내다보는' 추론 능력이다.

40년 전 4륜구동 SUV와 집앞배송 시대를 예측했던 페이스 팝콘은 통찰력의 근원을 '성경'에서 찾았다.

잡스의 초기 좌우명은 '생각하라(Think)'였다.

이후 그의 평생 좌우명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로 바뀌었다.


한국 기업들이 풍전등화의 신세에 놓였다.

정치가 기업을 도와주기는커녕 수렁으로 내몰고 있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이 시기에 통찰력 있는 기업인, 정치인이 그리울 뿐이다.


[남기현 컨슈머마켓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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