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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서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다.
3~4월은 미세먼지나 중국발 황사라는 '복병'이 있지만, 한낮에는 20도까지 올라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운동하기 좋다.
그중 걷기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의성(醫聖)이라는 히포크라테스도 "걷기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약이다(walking is man's best medicine)"라는 말을 남겼다.
걷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으로 우리 몸의 100개 넘는 근육을 움직여 긴장을 풀어주고 골고루 발달시켜 준다.
하루 평균 걸음 수는 오랫동안 '1만보'가 권장됐지만, 2500보만 걸어도 심혈관질환 위험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고 6000보는 제2형 당뇨병을 낮춰준다고 알려져 있다.
8000보 이상 걸으면 비만, 수면무호흡증, 우울증 위험이 낮아지고, 9800보를 걸으면 치매에 걸릴 위험을 50%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팀이 40세 이상 남녀 4840명(평균연령 56.8세)을 대상으로 약 10년에 걸쳐 '하루 평균 걸음 수와 사망률 관계'를 조사한 결과 걸음 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사망률이 떨어지지만 1만보 이상이 되면 거의 변동이 없었다.
이 때문에 최근 건강 효과가 가장 좋은 걸음 수는 7000~8500보라는 주장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거리로 환산하면 약 4~5㎞(1보 50~60㎝)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64세 남녀 모두 하루 목표 걸음 수로 8000보를, 65세 이상은 6000보를 권장한다.
일본 전문가들은 하루 적정 걸음 수로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65세 이상이라도 하루 1만보 이상을 걸으라고 조언한다.
오타니 요시오 이케부쿠로 오타니 클리닉 원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직장과 집에서 장시간 앉아서 생활하는 현대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은 질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루 1만보 넘게 걸으라"며 한 연구 결과를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일본 교토부립 의과대 대학원이 약 6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사망 위험이 높고, 지병이 없어도 낮에 앉아 있는 시간이 2시간 증가할 때마다 사망 위험이 1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생활습관병이 있는 사람은 사망 위험이 더욱 높았다.
예를 들어 당뇨병은 27%, 고혈압은 20%, 지질이상혈증은 18% 증가했고, 이들 3개를 갖고 있으면 사망 위험이 42%나 늘었다.
오타니 원장은 "걷기는 뇌나 마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당뇨병, 고혈압, 비만, 요산치, 수면무호흡증 등을 비롯해 감염병이나 폐렴 위험을 낮춰준다.
특히 13종류의 암에도 효과가 있었고 그 밖의 많은 질환 위험을 줄여준다"고 강조했다.
걷기는 먼저 비만에 효과가 있다.
살을 빼려면 스쾃이나 근육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통해 내장지방을 먼저 줄여야 한다.
걷기는 당질과 내장지방을 태워 에너지로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
내장지방은 위나 소장 등 장기 옆에 쌓이는 지방으로, 필요 이상으로 쌓이면 배가 나오는 체형을 만든다.
이른바 '맥주배'가 된다.
내장지방은 배 속 장기 주위에 축적돼 있어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장지방은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바꾸면 피하지방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안에 뺄 수 있다.
또 걷기는 고혈압을 개선할 수 있다.
몸무게 1㎏을 빼면 혈압이 1mmHg 떨어지고, 비만인 사람이 살을 4~5㎏ 빼면 고혈압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복부비만은 고혈압과 함께 당뇨병, 이상지질혈증과 같은 생활습관병으로 악화될 수 있는데, 걷기는 여러 질병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적극 실천하는 것이 좋다.
걷기는 당뇨병에도 좋다.
국내 당뇨병 환자는 382만8682명(2023년 기준)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대한당뇨학회는 국내 당뇨병 환자가 600만명, 당뇨전단계는 1500만명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뇨병은 실명, 심장병, 신부전, 다리 절단 같은 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연구팀이 평균연령 70세의 혈당이 약간 높은 당뇨병 예비군 10명을 대상으로 '오전 10시 30분부터 45분 걷기' '오후 4시 30분부터 45분 걷기' '매 식후 15분 걷기 3번 하기' 등 3가지 패턴으로 나눠 혈당을 측정했더니 '매 식후 15분 걷기 3번'이 가장 혈당이 억제되고 혈당 변동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후에 짧은 시간이라도 자주 걷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
'먹으면 바로 걷기'가 좋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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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신장병 및 수면무호흡증에도 효과가 있다.
주요 발병 원인이 고혈압과 당뇨병인 신장병도 걷기를 하면 기능 저하가 완만해진다.
환자 약 3분의 2가 비만이라는 수면무호흡증도 걷기로 살을 빼면 증상이 개선된다.
실제로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코골이·수면무호흡증 환자들이 약물 치료나 수술에 앞서 몸무게를 5㎏만 빼도 증상이 크게 개선되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폐렴에도 걷기는 좋다.
일반적으로 부하가 큰 근육 운동이나 달리기 같은 격렬한 운동은 면역력을 낮추고, 걷기 운동 같은 가벼운 운동은 면역력을 높여준다.
걷기로 면역력을 올려주면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되고 결국 폐렴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홋카이도대학이 폐렴으로 사망한 약 1200명과 걷기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하루에 1시간 이상 걷기 운동을 했던 사람은 폐렴에 의한 사망 위험이 낮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걷기는 13가지 암의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약 18만7000개 사례의 암을 분석한 '암과 신체 활동의 대규모 조사' 결과,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면 유방암, 방광암, 직장암, 두경부암 등 13가지 암의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을 하면 자율신경을 바로 잡아주고 우울증도 개선된다.
'병은 아니지만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다' '피곤함이 풀리지 않는다' '어깨가 결린다' '의욕이 나지 않는다' 등은 자율신경 균형이 깨져 발생한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
또 '스트레스로 속이 쓰리고 배탈이 났다'는 증상도 자율신경 교란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증상을 방치하면 자율신경 실조증(불균형)에 걸려 스트레스와 결합해 신경성 위염이나 과민성 장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깊은 호흡을 의식하면서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이 운동과 우울증에 관한 30개 논문을 분석한 결과 '일주일에 150분 걷기 운동으로도 우울증 위험이 낮아졌다'고 확인했다.
이는 매일 약 20분 걷는 것만으로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걷기는 치매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이 중장년 남녀 1450명을 약 20년 동안 조사한 결과 주 2회 이상 걷기를 시작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는 사람은 치매 발병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걸으면서 주변 사람이나 장애물을 피해야 하고, 뇌가 자연스럽게 손발 또는 몸에 지령을 내려 멀티태스킹 처리 능력을 키우게 되고 대뇌피질 기능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걷기는 많은 연구를 통해 효과가 확인됐다.
그러나 걷기는 어슬렁거리며 그냥 걸으면 운동이 되지 않는다.
보폭을 넓혀 빨리 걸어야 운동 효과가 크다.
빠르게 속보(速步)를 해야 혈관내막에서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는 혈액에 의해 자극을 받아 내피세포가 활성화되고, 혈관을 넓혀주는 일산화질소(NO)가 분비된다.
걷는 자세도 중요하다.
잘못 걸으면 어깨, 목, 무릎, 허리에 통증을 유발할 수있다.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 교수는 "걷기는 허리를 곧게 펴고 머리를 세운 다음 팔에 힘을 빼고 크게 흔들며 걷는 것이 좋다.
발은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게 하고 앞꿈치로 지면을 차듯이 전진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요령"이라고 조언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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