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서민·애타는 중기 외면”...대기업 대출은 20% 늘린 은행, 성장판 망가진다 [기자24시]

은행 기업금융 창구 [연합뉴스]
올 들어 3분기까지 5대 은행이 중소기업에 내준 대출은 전년 동기보다 겨우 6% 늘었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상 대출은 20% 신장했다.

은행의 전체 기업 여신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소기업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올해 대출 증가액 절대치는 양쪽이 유사하다.

이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10% 늘리는 동안 대기업 여신은 5% 줄였던 것과 대조된다.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안 좋은 데다가 금융당국에서 은행에 건전성을 관리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이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아무래도 불경기에는 작은 기업일수록 대출을 연체하거나 부도낼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실제 올해 들어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대기업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은행도 수익성에 기반을 두고 지속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조직이니 신용도 높은 기업에 더 많은 돈을 내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작금의 문제는 금융에서 중소기업이 원천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에 있다.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한 기업 가운데 연체 위험이 큰 곳을 솎아내는 것을 넘어서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신에서 배제하는 흐름이 생기는 것이다.

일례로 한 시중은행은 중소기업이 대출받으러 왔을 때 영업점 재량으로 우대금리를 부여할 권한을 빼앗았다.

또 직원들의 핵심 성과지표 산출에서 11월 이후 중소기업 대출 실적은 제외하기로 했다.

굳이 작은 기업 대출에 힘 빼지 말라는 의미다.


서울 서초구 한 법률 사무소 앞에 붙어 있는 파산 상담 안내 [연합뉴스]
은행 입장에서는 큰 기업 위주로 여신을 실행하면 부실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이는 외려 위험성을 극대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산업계에서 자꾸 큰 바퀴에만 윤활유를 칠하다 보면 언젠가는 전체 기계가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시적인 자금난만 넘기면 성장 궤도에 오를 중소기업의 싹을 자르는 건 은행으로서도 잠재 우량 고객을 잃는 일이 될 수 있다.

건전성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경제 성장판까지 끊어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창영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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