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담다> 비하인드는 김원경 PD와 아나운서 이담, 김수진 작가 등 제작진과 출연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촬영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가수 김연자 편에서는 트로트와 함께한 그녀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과 들여다봅니다.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가수 김연자는, 일본 엔카 무대에서부터 국내 트로트 열풍의 중심까지, 변함없이 무대를 지켜온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아모르 파티>로 전 세대를 아우르며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은 그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깊은 감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과거가 아닌 오늘을 노래하는 영원한 현역 가수입니다.
◇ 김수진 작가의 크레딧 쿠키 - 작은 고추가 매운 이유
작은 고추는 보통 맵다. 고추는 짐승이나 병충해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매운 작물로 진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친 환경일수록 더 매워진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가수 김연자가 그렇다. 제대로 매운 작은 고추 같다. 가수 인생 50년 참 힘든 시간을 버텨왔다. 남들이 학교 다닐 때 마이크를 잡았고, 잠잘 시간엔 밤무대에 올랐다. 끝까지 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환경이 척박해질수록 더 강해지는 작은 고추 같다.
"1974년에 데뷔는 했지만 어려웠어요. 긴 무명생활이 이어졌죠. 그래서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일본어도 못했어요. 발음이 안 좋아 혼도 많이 났어요."
낯설고 물 선 타국에서 홀로서기가 쉬웠을까? 3년 동안의 일본 활동에서 또 실패. 그 때 유일하게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어머니였다. 밤무대에 설 땐 밤새 나를 지키는 보디가드였고, 무너져 내릴 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딸을 응원했던 어머니였다.
"일본에서 속상할 때 어머니에게 전화하면, 바로 말씀하셨어요. 돌아와 버리라고…향수병에 걸렸을 때 가장 힘이 돼 주신 분이 저희 어머님이세요."
세상 모든 어머니의 시계는 늘 내 시계보다 빠르다.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마음이 급하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세요."
작은 고추가 운다. 지난 시간의 한을 토해내기라도 하듯…나는 함께 빌어본다. 가수 김연자의 오랜 가수 생활이 남아있길…그녀의 어머니에게도 오랜 시간이 남아있길….
◇ 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 폭풍을 품은 봄바람 같은 사람
형형색색의 화려한 의상. 반짝이는 커다란 액세서리. 카리스마 있는 눈빛. 파워풀한 음성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무대. 가수 김연자,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2024년 5월 데뷔 50주년을 맞은 김연자 선생님이 이야기를 담다 1회에 출연하셨다. 이야기를 담다를 열어주신 소중한 손님이었다.
# 엔카의 여왕
그로부터 13년 전인 2011년 5월. 진행하던 뉴스프로그램에서 김연자 선생님을 모셨었다.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22년 활동하다 돌아와 국내 활동을 활발히 시작하셨을 때다.
'엔카의 여왕'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부모님이 김연자 엄청 유명하신 분이야"라고 하셨다. 회사에서 뉴스 스튜디오로 너도나도 사인을 받겠다고 몰려왔다. 그날 뵀던 김연자 선생님은 참 겸손하셨고, 소녀 같으셨다.
무대에선 다르다. 소녀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남다른 에너지와 파워를 보여준다. 특유의 블루투스 창법!
성량이 좋아서 입에서 마이크를 멀리 떨어뜨리는 걸로 소리를 조절한다고 한다. 소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마이크를 거의 무릎 위치까지 떨어뜨려서 노래를 해도, 수음이 완벽하게 된다. '김연자에겐 마이크가 필요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방송을 통해 볼 때마다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두 눈으로 실제 그걸 보게 됐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무대는 저토록 힘이 넘치는데, 대화를 나눌 때는 다시 소녀모드로 돌아오셨다. 13년 전 인터뷰 때에도 약간 수줍어하시며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 모습 그대로셨다.
"나 오늘 방송한다고 어제 백화점 가서 이 치마 샀잖아요"라며 붉은 꽃이 그려진 치마를 휘 둘러 보이셨다. 그 모습이 꼭 순수한 소녀 같으셨다.
인터뷰 당시 새 앨범의 타이틀이 '고맙습니다'라는 신나는 곡이었다. 신곡의 댄스 챌린지 영상도 같이 찍게 됐다. 영상으로 춤을보여주시고, 김연자 선생님도 나도 함께 춤을 익히고 영상을 찍었다. 이 때에도 소녀같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정말 사랑스러우신 분이다.
# Amor Fati
"저는 인간 김연자보다는 가수 김연자를 위해 살아온 것 같아요." 가수 김연자가 아니라 인간 김연자의 인생을 돌아보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를 부르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김연자. 그 운명을 감수하고 사랑한다고 하셨다. 김연자의 삶, 그 자체가 Amor Fati 였다.
◇ 김원경 피디의 비하인드컷; 김연자, 운명을 춤추다
사람에겐 '첫정'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있다. 기억의 정원에서‘처음’이란 단어는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 차 있으며, 때로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새겨진다. 첫사랑, 첫 키스, 첫 만남, 첫눈…. 그리고 첫 게스트. 이담 아나운서의 이름을 따서<이야기를 담다>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몇 달을 정성스레 준비한 첫 방송에 모실 게스트!! 첫 방송에 맞는 무게감과 화제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 필요했다. 그 주인공이 김연자 가수였다.
긴 시간 기다려서 모신 첫 게스트를 잊을 수가 없다. 시원한 고음 스킬로 스튜디오를 충만하게 만들어주고, 연로하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눈물도 흘리고, 댄스 챌린지 숏츠도 먼저 제안해주고…. 방송에서 그야말로 희로애락을 즐겨주시니, 첫 방송하는 피디마냥 행복했었다. 그 첫정이 가슴에 박혀 새겨졌다.
# '아모르 파티'…왜 도는 걸까?
철학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이해도 못 하는 니체의 책들을 읽어내려갔고 내게 남은 단어들은 '영원 회귀', '신은 죽었다', '아모르 파티', '위버멘시', '디오니소스' 등이었다.
그 단어들은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아 삶이 지치고 힘들 때 꺼내 먹는 영양제 같았다.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나의 공식은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 이 사람을 보라 중 프리드리히 니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운명애(運命愛)를 말한다.
"운명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재를 즐겨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은 기꺼이 받아들여라!"
"삶을 즐겨라!!"
전 세대가 즐기는 노래, 김연자 가수의<아모르 파티>는 그녀에게 꿈을 이뤄준 인생곡이었다. 2013년에 발표했지만 반응이 없어서 더 활동하지 않은 노래였다. 그런데 가사도 기억 안 나는 노래를 열린 음악회 PD가 꼭 불러 달라고 해서 무대에 올린 곡이었다.
가수 엑소가 그 무대를 보고 SNS에 "이 노래 40초만 들어주세요"라고 올리면서 이슈가 되고 지금의 '아모르 파티'가 탄생하게 됐다.
그녀는 왜 이 노래를 부르면서 도는 걸까?
김연자 : 참 희한한 게 카메라 리허설 할 때는 어지러워요. 그래서 중간에 조금 쉬어요. 그런데 딱 본방송에 들어가면 관객들의 열기, 환호성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냥 신이 나서 돌아요. 계속 끊임없이 돌게 돼요. 전 가수예요. 가수 빼면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 진짜 노래하며 춤출 때가 제일 행복해요.
니체의 '디오니소스'는 음악과 춤에 도취되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더없이 행복한 황홀경에 도취된 디오니소스적인 힘! 가수 김연자가 '아모르 파티'를 부르면서 도는 이유는 그 디오니소스의 힘이 자신도 모르게 발휘되는 게 아닐까?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아모르 파티 중 김연자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되뇌어 본다. 그래 밟힐수록 더욱 힘이 난다. 삶의 의지가 생긴다.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돼도 후회하지 않을 현재를 만들자. 아모르 파티!
◇ 이야기를 담다, 그 후-50년의 기억을 담다
데뷔 5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그 시작을<이야기를 담다>에서 열 수 있었던 건 큰 의미가 있었어요.<이야기를 담다>첫 번째 출연자로서 중요한 포문을 연 만큼, 이후 더 글로리 Part 1, 2, 3까지 이어지는 기념 프로젝트의 단단한 기반이 되어준 방송이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지켜봐 준 분들, 그리고 처음 알게 되신 분들 모두에게 저의 50년을 잘 전해드릴 수 있도록 아주 알차고 진심 어린 인터뷰로 이끌어주셨죠. 그날 마셨던 따뜻한 생강차의 향처럼, 인터뷰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 마이크 퍼포먼스를 보여드렸던 장면, 북한 단독 공연에 대한 추억까지… 그 모든 장면들이 참 소중하게 남아 있어요. 특히 이담 아나운서와 함께한 쇼츠 촬영도 인상 깊었어요. 안무도 금세 익히고 춤도 정말 잘 추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무엇보다 50년 동안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팬 여러분과 많은 분들의 사랑 덕분이라는 감사한 마음을, 방송을 통해 진심으로 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점이 가장 뜻깊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 김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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