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번호 808897·공기 조절 장치'.
1906년 미국의 한 젊은이가 이 특허를 등록할 때만 하더라도 세상을 바꿀 줄 몰랐다.
'시원함의 왕(King of Cool)'으로 불리는 윌리스
캐리어(1876~1950)다.
무더위에서 세상을 구한 이 발명 특허는 원래 인쇄실에서 습한 여름에 잉크가 번지는 현상을 막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캐리어는 1915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로 사업을 확장했고 극장과 사무실, 주택에 쾌적한 온도를 선사하는 마법의 기계를 전파했다.
그의 발명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미 과학 저술가 스티븐 존슨의 평가로 확인된다.
그는
캐리어가 공기의 순환을 '인간의 순환'으로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에어컨이 가가호호 설치되면서 남부에서 북부로 유입되던 인구 흐름이 달라졌다.
뜨거운 남부 '선벨트'에 사람이 몰리면서 1920년 초 100만명에 불과했던 플로리다 인구는 40년 만에 다섯 배로 늘었다.
경제학자들은
캐리어 덕분에 실내 근무 효율이 올라 노동생산성이 향상됐다고 입을 모은다.
최적의 온도를 선물해온
캐리어는 이제 고열을 뿜는 데이터센터에서 새 먹거리를 만들고 있다.
한 세기가 흘렀는데 밥그릇이 커지는
캐리어를 상대로 한국의
삼성전자가 도전을 시작했다.
삼성은 최근 2조4000억원을 베팅해 독일 공조회사 플랙트그룹을 인수했다.
삼성의 조 단위 인수·합병은 하만(2017년) 이후 8년 만이다.
작년에는
캐리어의 경쟁 기업인 레녹스와 의기투합해 미국에 합작법인을 세웠다.
세계 최초 공조기 회사를 상대로 곳곳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서 삼성이 뜀박질을 하는 사업이 '공기 조절 장치'라는 게 흥미롭다.
지구는 계속 뜨거워진다.
전기 포식자인 AI 기술은 방대한 열을 분출한다.
110년 역사의 미국 혁신 기업을 상대로 한 삼성의 도전은 늦었지만 쿨하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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