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TSMC 천하' 깨려면 … TSMC 고객사의 불만 살펴라 [허대식 교수의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21세기 들어 반도체는 경제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며, 미·중 전략 경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대만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60%를 상회하는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10% 내외의 점유율을 보이는 삼성전자가 이러한 격차를 단기간에 만회하고 시장 선두로 도약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TSMC는 어떻게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이토록 확고한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TSMC는 1987년 세계 최초의 순수 파운드리 기업으로 출범해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분리하는 산업구조를 창조했고, 이는 오늘날 팹리스 중심 생태계의 성장을 견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창립 이래의 경영 철학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자체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고객 맞춤형 기술 지원, 공동 개발 등을 통해 강력한 고객 파트너십을 구축해왔다.

TSMC는 팹리스 고객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EDA(반도체 설계 자동화), IP(설계 자산) 제공 업체, 디자인하우스 등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왔다.


그렇다면 TSMC가 독점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 시장에서 후발 주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 출발점은 충족되지 않은 고객의 니즈에서 찾아야 한다.

TSMC는 500개가 넘는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중 매출의 80% 이상이 상위 30개 미만의 핵심 고객에 집중돼 있다.

이들 핵심 고객에는 선단 공정 물량과 기술 지원이 우선 배정되는 반면, 중소형 팹리스나 신생 고객사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TSMC 전체 매출에서 아직 비중이 크지 않은 자동차용 반도체 및 사물인터넷(IoT) 반도체 분야는 앞으로 고성장이 기대되는 영역임에도 전략적 우선순위에서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선단 공정의 높은 생산단가는 일부 고객에 가격 부담을 안기며, 합리적인 가격과 기술 신뢰성이 조화를 이루는 대안을 찾으려는 수요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시장 선도 기업이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고객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후발 파운드리 기업이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미·중 기술 갈등, 중국과 대만 간 군사적 긴장, 그리고 대만이 지진, 가뭄 등 자연재해에 빈번히 노출된다는 점은 TSMC에 과도하게 의존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이에 따라 주요 반도체 고객 기업들은 공급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2, 제3의 지역 기반 파운드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한국, 유럽 등에서 생산 거점을 확보한 파운드리 회사는 이러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 속에서 중요한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고객의 불만과 공급망 리스크라는 두 축에서 발생하는 시장 수요를 전략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서 국내 파운드리 기업은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먼저 고객 중심의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팹리스 고객사들은 자신들의 설계 자산과 노하우가 철저히 보호받고, 위탁생산 기업이 자사와 직접 경쟁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진정한 장기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소형 고객의 특수한 수요에 맞춰 최적화된 맞춤형 공정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대형 파운드리가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틈새 시장을 파악해 선점해야 한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반도체 기술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 기업은 기술적 비전을 갖춘 엔지니어 중심의 경영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첨단 공정, 고성능 패키징, 에너지 효율 최적화, 인공지능(AI) 등 고객의 기술 수요를 실무적으로 이해하고 전략에 반영할 수 있는 기술 기반 리더십 구조가 확립돼야만 진정한 기술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다.


[허대식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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