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일본의 오너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만 있으면 모범적인 거버넌스라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지만 회사 주주들이 경영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단순히 이사회의 다양성을 늘리기보다는 새로운 세대의 이사진을 육성해야 합니다.

"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우미노 가오루 후지텍 의장이 창업주 일가가 이사회를 넘어서는 강한 영향력을 지니는 거버넌스 구조가 한국과 일본 기업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수주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 거버넌스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를 제조하는 후지텍은 일본에서 행동주의 펀드 성과를 얘기할 때 손꼽히는 기업이다.

2022년 주주총회 직전 홍콩계 행동주의 펀드 오아시스의 반대로 우치야마 다카카즈 사장의 연임안이 철회됐다.

다음해 오아시스의 주주제안으로 우미노 가오루 디엘에이파이퍼 파트너 변호사가 후지텍 이사회 첫 여성 의장으로 선임되며 회사의 경영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후지텍은 행동주의 펀드 오아시스가 이사진을 교체하면서 결국 전 사장의 '오너십 남용' 의혹을 일소하기에 이르렀다.


우미노 의장이 취임 후 내건 첫 과제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검토하는 일이었다.

그는 외부 고문을 영입해 기업 전반의 구조를 분석한 뒤 경영진 교체에 나섰다.

그는 "한 사람이나 가족에게 좌지우지되는 기업은 의사결정 과정이 빠를 수는 있으나 정상적이지 않다"며 "정상 기업은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면서 때로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미노 의장이 선임된 지난해 3월 24일부터 올해 5월 2일까지 후지텍 주가는 30% 이상 급등했다.

우미노 의장은 한국에서도 강력한 오너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가 기업과 주주들 이익에 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카카즈 전 사장은 회사가 가족의 연장선인 듯 행동했으나 상장사가 되면 더 이상 기업은 특정 가족의 것이 아니다"며 "경영진은 물론이고 사외이사까지 오너의 판단에 의문을 표할 수 없는 기업은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에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이사진을 육성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후지텍이 가족 중심 경영에서 이사회 중심으로 바뀔 수 있었던 씨앗은 일본 정부의 거버넌스 코드로 뿌려졌다.

일본 정부는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2015년 기업 거버넌스 코드를 만들었고,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중심으로 개정을 이어가고 있다.

우미노 의장은 "한국에서도 소수주주 권리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걸로 아는데 일본의 거버넌스 코드는 이사와 소수주주 사이에 배려를 더 담아내는 방향으로 개정돼왔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지난해 기업 인수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경영진이 인수 제안 검토 과정을 기록하도록 함으로써 오너가의 독단적 인수 거절을 막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전폭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며 일본 상장사의 사외이사 비율은 늘어나는 추세다.

오아시스에 따르면 일본 프라임 시장 상장사의 사외이사 비율은 2015년 21.8%에서 지난해 43.8%까지 증가했다.


오아시스가 지난해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우미노 의장 등 사외이사 4명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창업주 일가의 방해 공작 등 '성장통'도 있었다.


[도쿄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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