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희망퇴직 조건 오히려 나빠져…이자장사 눈총 의식

'역대급 이익'에도 은행권의 희망퇴직 조건이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임금의 400%까지 나눠줬던 직원 성과급도 올해에는 규모를 축소하는 분위기입니다.

오늘(31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모두 희망퇴직 조건이 1년 전보다 나빠졌습니다.

국민은행은 지난 29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습니다.

희망퇴직 대상은 1972년생부터이며, 특별퇴직금으로 근무 기간 등에 따라 18∼31개월 치 급여를 지급합니다.

1년 전(23∼35개월)보다 특별퇴직금이 줄었습니다.

우리은행도 지난 29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으며 ▲1968년생에게는 월평균 임금 24개월 치 ▲1969년 이후 출생자부터는 31개월 치를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합니다.

1년 전에는 1967년생에게 24개월 치, 1968년 이후 출생자에게는 36개월 치의 특별퇴직금을 지급했습니다.

지난 28일부터 신청을 받는 하나은행(최대 36개월 치→최대 31개월 치)과 지난 15∼20일 신청을 받은 신한은행(최대 36개월 치→최대 31개월 치)도 조건이 나빠졌습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으며 372명의 직원이 퇴직합니다.

농협은행은 특별퇴직금으로 만 56세 직원에게 28개월 치 임금을, 일반 직원에게 20개월 치 임금을 지급합니다.

1년 전보다 특별퇴직금 조건(56세 28개월 치, 일반직원 20∼39개월 치)과 퇴직 인원(493명)이 모두 줄었습니다.

은행권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금리 덕에 이자 이익이 늘면서 역대급 실적을 냈습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5대 은행의 누적 순익은 약 11조3천28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약 10조759억원)보다 12.4% 증가했습니다.

이자수익에서 이자비용을 뺀 이자이익은 약 28조 6천920억 원으로 역시 작년 같은 기간(약 26조3천 804억 원)보다 8.8% 늘었습니다.

실적이 작년보다 좋아졌는데도 희망퇴직 조건이 나빠진 것은, 고금리 시기 은행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결정으로 해석됩니다.

은행권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급증한 대출과 기준금리 상승으로 손쉽게 돈을 벌면서, 불어난 이익을 공익에 환원하기보다는 임직원들의 성과급이나 퇴직금을 늘리는 데 몰두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성과급 지급과 희망퇴직은 매년 반복된 일이지만, 올해 정부가 공개석상에서 직접 문제를제기하면서 비판 여론은 더욱 커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은행의 성과급 지급에 대해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한 데 이어, 지난 10월∼11월에도 '종노릇', '갑질' 등의 표현을 쓰며 은행권을 질타한 바 있습니다.

은행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임금인상률과 성과급 역시 줄이는 분위기입니다.

은행권 임금인상률은 지난해 3.0%에서 1.0%포인트(p) 낮은 2.0%로 결정됐습니다.

농협은행은 올해 임단협에서 성과급을 통상임금의 200%에 300만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작년 통상임금 400%에 200만원을 지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성과급이 줄었습니다.

신한은행 역시 성과급을 작년 기본급의 361%(현금 300%·우리사주 61%)에서 올해 기본급의 281%(현금 230%·우리사주 51%)로 축소했습니다.

국민, 하나, 우리은행은 아직 임단협을 진행 중이지만 역시 지난해보다 성과급 규모를 줄일 것으로 보입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적이 좋아진 것은 맞지만, 여론 등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노사가 조금씩 양보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 김우연 기자 / kim.wooyeon@mktv.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