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것이 인생의 가장 슬픈 기억”…귓전에 맴도는 선배의 고백 [World & Now]

일본의 고령자 주택 가보니
월 15만엔에 식사·청소 지원
치매시설은 리조트처럼 꾸며
노인 개개인 존중받으며 생활

호황 실버타운 턱없이 비싸고
요양원 열악한 한국과 대조

도쿄 추오구 코코판 가치도키 요양원에서 색칠하기 놀이를 하고 있는 어르신들 [도쿄 이승훈 특파원]
최근 일본 요양원 두 곳을 취재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 곳은 중증 환자로 분류된 치매 노인이 생활하는 곳이었고, 다른 하나는 식사나 청소 등의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며 지내는 곳이었다.


치매 환자가 모여 있는 요양원은 지난해 지어져 시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요양원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없었다.

같은 시간에 치매 노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식사를 제공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환자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시간과 방식을 달리한다.

디지털 기기가 갖춰진 체육시설과 지역주민과도 어울릴 수 있는 1층 카페 등도 있어 작은 리조트에 온 느낌마저 들었다.


108명이 생활하는 공간에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요양보호사가 절반 가까이 됐다.

인력 부족이 심각한 일본인지라 외국인 직원도 많이 보였다.

도쿄에서만 150개의 시설을 운영하는 이 회사는 전체 요양보호사의 15%가량이 외국인이라고 했다.

고령화 문제에 관한 연구가 앞선 일본 정부는 진작부터 외국인 인력을 이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상태다.


본인이 살던 집을 그대로 옮겨온 코코판 가치도키 요양원의 1인실 모습 [도쿄 이승훈 특파원]
다른 한 곳은 청소·식사 등 노인이 하기 불편한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고령자 주택이었다.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산골에 지어지는 한국 요양원과 달리 이곳은 시내와 가까운 53층 주상복합아파트의 1~4층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아파트 용지의 일부를 가진 지지체가 개발 허가와 복지 시설을 맞바꾼 결과다.

눈앞의 이익만 신경 쓰는 한국 여느 지자체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1인실 30곳과 부부용 2인실 4곳이 있는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표정은 밝았다.

자신이 생활하던 환경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사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중산층은 꿈도 못 꿀 최고급 요양시설과 창살 없는 감옥같은 요양시설 두 종류만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자신의 경제 형편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특히 중산층의 경우 선택지가 더욱 많다.


도쿄 세타가야구의 츠루마키노이에 요양원 전경. 지난해 8월 지어져 산뜻한 3층 건물이 인상적이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요양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비용부담도 크지 않다.

매월 내야 하는 돈은 15만엔 안팎이지만 연금과 약간의 저축으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본 70대 노인의 평균 연금(후생연금+국민연금) 수급액은 월 14만엔이 넘는다.


일본이 연금만으로도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계획할 수 있게 된 것은 2004년 있었던 연금 개혁 덕분이다.

보험료율이 18.3%로 높아졌고 수급 시기도 미뤄졌지만 많은 국민이 지금의 연금 수준에 만족한다.

반면 한국의 보험료율은 27년째 9%에 묶여 있다.

정부나 야당이나 연금 개혁은 먼 나라 얘기다.

적게 내는 만큼 적게 받다 보니 죽어야만 해방되는 요양원이 한국 노인의 마지막 선택지가 되고 있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셔다드리고 집에 온 것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기억이다.

” 친한 선배의 울음 섞인 얘기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슬펐다.


이승훈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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