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여수 엑스포 팔이 관광이다. 10년째, 지겹다. 여수 사람들이 ‘엑스포’라는 타이틀을 이제 붙이지 말자는 이야기도 한다. 여수에 있는 많은 역사자원을 찾아가면 될 텐데 말이다.”
한 여수시민의 말이다. 올해는 2012 여수 세계박람회가 개최된 지 10주년, ‘여수 관광이 10년째 제자리걸음으로 주춤거리고 있다. 엑스포 팔이 이제 그만하고, 역사자원에 주목할 때’라는 것이다.
10년 전,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쏠렸던 여수 세계박람회, 성공적인 박람회 개최 이후 여수는 연간 1천만 명이 넘는 해양 관광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최근 관광객이 크게 줄고 있다. 게다가 요즘 갈팡질팡하고 있다. 박람회가 열렸던 박람회장은 10년 동안 사후 활용에 대한 운영 주체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됐다.
운영 주체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보니 시설 유지와 보수도 버거운 실정이다. 여수 엑스포장은 인적이 끊겨 세월의 더께만 가라앉은 채 쇠락하고 있다. 박람회장 사후 활용에 대한 정부의 의지 부족과 지역 정치권의 이해 대립이 가져온 결과다. 이러니 세계박람회를 여수 관광의 상징 이미지로는 불편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여수시민들마저 ‘엑스포 팔이’에 냉소적인 이유다.
시민들은 ‘엑스포 팔이’ 말고 여수의 역사자원에서 관광객을 불러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순신 마케팅이나 거북선 제작지인 선소(船所)유적지가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영화 ‘한산’이 뜨겁다는 것에서 찾은 발상이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이 2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450만 관객을 모았고, 1천만 관객몰이에 나섰다.
그렇지만, 정작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 거북선을 만든 ‘여수선소유적지’는 조용하기만 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 속에 관리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거북선과 이순신의 흔적과 연결하는 작업은 찾아볼 수 없고, 뚜렷한 콘텐츠가 없어, 관광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영화 ‘한산’ 뜨는데,
영화 주인공 거북선 만든 ‘여수 선소유적지’는 토목 사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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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유적지와 여수바다, 뒤편에 선소대교가 보인다 |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자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활동 본거지인 여수 선소는 1995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지만, 관리 소홀로 인해 관광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곳이 거북선을 비롯한 전선(戰船)과 병기의 제작과 수리를 했던 유서 깊은 곳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배를 정박시켰다는 굴강은 썰물 때면 바닥을 드러내 제 역할을 짐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무기 제작과 수리가 이뤄졌다는 대장간도 형식적인 복원에 그쳤다. 현재 선소 모습이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했던 곳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축소돼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역사 스토리텔링과 의미 있는 콘텐츠 재연이 필요하지만 이런 일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거북선 복원도 애초 바다에 띄워 관광유람선화 하겠다는 계획에서 물러나 여수 이순신광장에 전시하는 ‘전시품’ 수준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앞으로 계획도 아쉽기만 하다. 선소 유적지의 온전한 복원이나 거북선 콘텐츠를 통한 부활이 아닌, 239억 원(시비 166억 원)을 들여 ‘선소테마정원 조성사업(22년 11월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 2024년 완공 예정)’이라는 명목으로 영상전시관과 산책길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여수시는 이를 위해 건축기획 용역, 건축 및 전시설계 용역 등이 진행 중이다.
여수시가 우물쭈물할 때 다른 지자체들이 발 빠르게 ‘거북선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파주시는 ‘임진강 거북선’을 복원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을 착착 진행 중이고, 대전에서는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의 걸작 ‘프랙탈 거북선’이 20여 년 만에 복원작업에 나섰다.
그나마 영화 ‘한산’을 통해 그 당당했던 옛 위용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위안거리다. ‘명량’(2013) 후속작 ‘한산’은 1592년 7월 조선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상대로 승리한, 그것도 거북선이 등장한 ‘한산해전’을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영화를 통해 본 한산대첩은 거북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린 전투였다. 전설 속의 해저 괴물(龜船)’이라고 불리며 왜군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당시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학익진(鶴翼陣·학이 날개를 편 듯이 치는 진)으로 대응했고, 일본 수군은 자신들의 장기인 백병전으로 응전했다. 그 순간 거북선 두 척이 일본 함대에 빠른 속도로 전진해 들어온다. 접근전은 일본 수군의 장기인데, 거북선이 일본 함대에 접근해 장기인 박치기로 적선을 들이받았다. 거북선의 충돌로 일본 함선은 두 동강이 나고, 일본 수군의 비명이 쏟아졌다. 일본 수군들은 바다에 그대로 수장됐다. 아비규환이었다. 거북선의 출현에 일본 배는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일본 전선 73척 중에서 59척이 격파됐고, 14척만 간신히 도주했다.
이순신 함대의 대승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군에 ‘해전 금지’ 명령을 내렸고 일본의 수륙 병진(竝進·함께 공격함) 전략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멋진 여수 거북선의 역사를 관광자원으로 연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진왜란과 이순신, 그리고 거북선은 여수 선소가 가지고 있는 역사 스토리의 부활, 이는 어느 지역에 견주어도 여수가 비교우위다. 선소 역사와 콘텐츠 부활이 필요한 이유다. 충무공 이순신의 얼이 깃들고, 조선 수군의 본거지인 전라좌수영 여수를 만날 수 있는 콘텐츠를 내세워야 한다. 튼튼한 판옥선과 거북선을 만들고,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가장 큰 건물인 진남관(국보 제304호)을 만든 돋보이는 목공기술의 본거지 여수를 보여줘야 한다. 여수 선소유적을 체험형 역사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새로운 역사문화관광자원의 체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늦었지만 여수는 지금부터라도 선소의 온전한 보존과 복원, 그리고 이순신과 거북선 콘텐츠 부활을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 양성현 작가 / kdata@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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