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 한은, 통화정책 영향력 약화 우려

◆ 스테이블코인 공습 ◆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우자 더불어민주당이 법안을 내며 보조를 맞췄고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상표권을 출원하며 스테이블코인 발행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제동을 걸었다.

한은 이창용 총재와 유상대 부총재는 민간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우려를 표명했다.


29일 한은과 금융권, 가상자산 업계 등에 따르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중앙은행의 독점적 화폐 발행권을 민간과 나눌 수 있느냐다.

한은법 47조는 "화폐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1950년 한은법이 생긴 이래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1 화폐 발행권 독점지위 흔들
한은은 최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급속히 확산되는 경우 화폐 대용재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중앙은행 통제 범위 밖에서 통화가 늘어나게 된다"며 "통화의 신뢰성이 저하되고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제약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9일 발행한 연례보고서 초안에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안정성과 통화 주권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하지 않으면 국부 유출을 막기 어렵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내 거래소에서 원화를 주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한 후 해외 가상자산 지갑으로 옮기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8년 한은이 발간한 '암호자산과 중앙은행' 책자에서는 "암호자산 발행에 따른 화폐 주조 차익이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의 특정 주체에 귀속되므로 정부 재정이 악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2 달러 스테이블코인 대체 여부
역으로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USDT(테더), 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지급 결제가 더 확산되기 전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대체재를 국민에게 제시해 통화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도 달러 스테이블코인 침투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 또한 많다.


유 부총재는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억제하자는 주장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가총액 기준으로 99%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고 해도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3 코인런 땐 대규모 손실 발생
이른바 '코인런' 리스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중요한 쟁점이다.

뱅크런이 은행에 대한 신뢰 붕괴에서 발생한다면, 코인런은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발생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원화 준비자산을 제대로 보유하지 않으면 2022년 테라·루나 사태처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으로 국채를 보유하는 경우도 리스크가 없지 않다.

코인런 발생 시 국채를 헐값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을 수 있다.


4 CBDC가 대안 될 수 있나
그렇다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은은 민간의 스테이블코인보다 CBDC 발행과 유통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CBDC는 발행 형태만 디지털일 뿐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법정통화와 다르지 않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현금보다 더 쉽게 자금을 추적할 수 있어 스테이블코인과는 대조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관(한은) 주도의 디지털화폐는 간섭과 통제 우려 때문에 민간에서 수용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5 국제무역통계 혼선 예고
달러 기반의 국제무역 통계가 뒤죽박죽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을 국제투자대조표의 금융 계정에 포함하게 하는 새로운 통계 매뉴얼(BPM7)을 2030년까지 적용하도록 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침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제도 개선이 스테이블코인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어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한은 관계자는 "결제 통화가 달러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바뀔 뿐 수출입 통계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무역 결제 대금을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주고받기 시작하면 국내로 달러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외환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지웅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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