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매일경제TV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 CEO인사이트 16호에서는 인터뷰 프로그램<이야기를 담다>의 제작진이 공개한 촬영 후일담이 담겼습니다.<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김원경 PD(‘김원경 피디의 비하인드 컷’)와 아나운서 이담(‘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김수진 작가(‘김수진 작가의 크레딧 쿠키’) 등 제작진과 출연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촬영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CEO인사이트를 통해 격주 단위로 공개됩니다.<이야기를 담다>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에 매일경제TV와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 철학자 김형석 편 전문.
105세 철학자 김형석은<백 년을 살아보니>등 다양한 저서를 통해 삶과 철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한다. 윤동주, 헬렌 켈러 등 역사적 인물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교육과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정년 이후에도 자기 성장과 사회 공헌을 실천하며, 일하는 삶이 곧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 김수진 작가의 크레딧 쿠키 - 공짜로 나이 들지 않는다
생로병사의 자연현상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숙명이다. 탱탱하던 이마엔 어느새 고랑이 패이고, 검은 머리에는 흰서리가 내린다. 샌 머리엔 억지 물을 들이고 늘어진 피부에 애써 팩을 얹어도 소용없다. 그동안 세월과 맞서 이겼다는 생명은 단 한 번도 본적 없었으므로!
그런데, 세월을 이긴 유일무이한 한국인을 만났다. 우리나라 최고령 철학자 김형석 교수다. 백세 시대, 백세 시대 흔히들 말하지만 진짜 100세를 넘기고도 정정한 어른을 만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동주, 안창호, 김일성과 동시대를 살았고, 위인전에서나 볼 수 있는 헬렌 켈러를 직접 만난 살아있는 역사책, 그 분은 햇수로 105년째 생을 살고 있다.
“나 자신에게 두 가지 얘기를 해요. 너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도 나아갈 길이 있다.
100세 이상 산 사람들이 하지 않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화내지 않고, 욕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기. 반대로 꼭 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바로 일과 공부다. 김형석 교수가 바로 그랬다.
“일하고 공부하면 성장해요. 성장하면 늙지 않아요”
105세 노교수가 세월을 이긴 비결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긍정의 힘, 일하고 공부하며 지성의 성장판을 자극한 열정 때문이리라. 적어도 염색약, 마스크 팩은 아니었으리라.
좀비가 되지 않고서야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끝이 제일지도 모른다. 105세 김형석 교수는 죽음의 공포마저 긍정으로 끌어안았다.
“태어나는 건 내 뜻대로 못 했어도 죽음의 의미만큼은 내가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월을 이기고 죽음도 초월한 대한민국 최고의 철학자, 100년 이상 오래도록 숙성한 삶의 향취에 흠뻑 취한다. 역시 공짜 나이는 없다.
◇ 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 내리막길을 오르막으로 설계하는 방법
100세가 넘는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처음이었다. 최근 방송에 나오셔서 이야기하시는 걸 보면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이시던데, 정말 저렇게 정정하신걸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김형석 교수님은 그 흔한 지팡이도 없이 걸으셨다. 인사를 나눌 때에도 꼿꼿하게 서 계셨다.
소리를 듣는 게 어렵다고 하셨지만, 말씀하시는 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발음도 음성도 또렷했다. 몇 세대를 뛰어넘은 소통은 특별한 경험이 됐다.
또 무엇보다 기억력이 참 좋으셨다. 시간, 장소, 고유명사... 모두 명확하게 말씀을 하셨고, 이야기의 기승전결도 완벽했다.
# 나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1930년생이시다. 군인이셨고, 키도 183센티미터에 아주 건장하셨다. 매일 운동을 하셨고, 신문과 책을 읽으며 일기도 쓰셨다.
내가 아는 한 할아버지는 절제된 기독교적인 삶을 해내셨다. 그래서 더더욱 영원히 건강하게 사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몇 년 전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 세상을 떠나셨다. 아흔셋. 할아버지의 마지막 해였다.
김형석 교수님은 무려 1920년 생이다. 외할아버지보다 10년 더 일찍 태어나신 분이다. 교수님의 삶이 궁금했다. 내가 보고 경험한 건 93세까지인데…93세 이후의 삶, 100세 이후의 삶이 궁금했다. 지금 나의 1년과 교수님의 1년은 얼마나 다를까?
# 65세 이후가 진짜
나는 얼마나 오래 살게 될까? 일을 좋아하는 나로선 100세 시대가 무섭기도 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으로 나는 얼마나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오래 살고 싶으면서도 오래 사는 게 두려워지는 이유였다.
교수님은 정년 이후 적어도 40년을 사셨다. 그 40년은 어땠을까?
교수님은 퇴직 이후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만났다고 했다. 한 가지 일을 할 때보다,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더 다양하게 공부하며 살게 되셨다고…. 특히 그 상황을‘더 자유로워졌다’고 표현하셨는데, 그 말 한마디에 닫혀있던 나의 창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 인생의 그래프
‘일’이라 하면, 난 ‘돈을 버는 일’만 떠올렸다. 눈에 보이는 가치를 생산하는 것만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선지 내 머릿속 정년 이후 인생의 그래프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하지만 김형석 교수는“학교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다. 독서도 공부다. 직장 일만이 일이 아니다. 봉사도 일이고, 취미도 일이다.”했다.
그런 김형석 교수는 아직도 매일 책을 읽고, 신문을 보시며, 일기를 쓰신다. 쏟아지는 강연 요청에 여기저기 강연을 하러 다니신다. 어쩜 그렇게 스스로를 바쁘게 하시는 걸까?
“관에 가져갈 수 있는 건 없어. 정신적 가치를 나눌 때 가치가 있는 거지.”
나눠주고 싶으셨던 거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그 가치를 나눠주고 계셨다. 인생의 그래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게 됐다.
# 105세의 결론
김형석 교수의 저서 '백 년의 지혜'에 이런 글이 있다.“100세를 넘기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일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돕는 데 있다.”“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더 큰 봉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인생관이다.”
더 큰 봉사의 기회를 얻기 위해 오늘 하루 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정년이 두렵지 않다.
모두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 정년이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일상의 진리에 용기를 더 해주는 시간이었다.
◇ 김원경 피디의 비하인드컷 - 백 년을 걸어 지혜를 나누다
1년이 52주니까 ‘오이독(五二讀)’을 하자 결심했다. 한주에 한 권만 읽자는 목표로 시작한 게 8년째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 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어릴 적 문방구에 가서 엄마가 ‘골라봐’ 했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가끔은 화장실까지 가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데 김형석 작가와의 만남이라니 불멸의 밤을 보내고 녹화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늙는게 아니라 성장하는 거다.
김형석 작가의 책<김형석, 백 년의 지혜>,<백 년을 살아보니>,<백 년의 독서>란 책을 읽었다. ‘백 년’이란 단어를 책 제목에 사용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해도 손색없는 105세 철학가의 책들이었다.
김형석 : 60, 70이 돼도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백 년의 지혜>를 썼어요. 대학에서 정년을 마치고 나와 보니, 학교라는 강에서 놀던 물고기가 사회라는 바다에 나온 것 같았어요. 오히려 주변에 관심도 많아지고, 일도 많아졌어요. 일이 있는데도 안하는 건 손해예요. 전 아직 성장할 곳이 남아 있었어요. 나이 든다는 건 늙는 게 아니라 성장하는 겁니다.
105세, 건강의 비결을 물어보니 하신 답변이다. 그를 성장시키는 ‘일’이란 무엇일까? 왜 정년이 지나고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걸까?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형석 : 70대 80대가 되니까 ‘일의 목적은 하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일하는 거다. 이제는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벌어서 주고 싶은 게 목적이 됐어요.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학문도 주고, 기술도 주고, 다 주고 가자, 경제적인 것도 주고 가자. 가난할 땐 소유를 위해서 일하고, 그 다음에는 일이 좋으니까 일하고, 그 다음에는 주기 위해서 일하게 됐죠.
그의 성장은 ‘나눔’이었다. 그의 인간애가 보인다. 일을 할수록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원동력이었다.“삶의 목표를 물질적 가치에 두는 사람은 인생을 3분의 1밖에 못 삽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가치가 있어야 3분의 3을 사는 것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105세 철학자의 건강 비결은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주고 가자’는 마음이었다.
김형석 교수는“나는 이제 몇 살인지 모르고 살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나눔이란 행복에 빠져있는 삶, 나이가 무슨 대수랴.
# 경제는 중산층 정신은 상위층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더 많이 누리도록 되어 있다.
- 김형석,<백 년을 살아보니>中
김형석 작가의 책 중에 인상 깊은 글귀였다. 녹화장에서 다시 한번 강조해서 이야기하신다. 물질적 풍요는 순간의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영혼의 풍요가 없으면 삶은 공허하다고 지적한다.
김형석 : 미국은<내 인생의 고전>을 고등학교, 대학교 때 다 읽게 해요. 그런 책을 읽고 사회의 한 중심이 되는 거죠. 영혼의 정신적 고양은 거기에서 오는 거죠. ‘누구의 책을 읽고 어떤 스승을 모셨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됐다’말할 수 있게요.
“내게 존경하는 스승이 있었던 것처럼 나도 작은 스승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소박하게 말씀하신다. 그는 벌써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 큰 스승으로 자리 잡았다. 10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30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강의와 행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를 만나고 나는 고민하게 된다. 내가 놓쳐버린 삶의 조각들은 어디에 있을까? 앞으로 그 조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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