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서민금융 등 사회공헌 활동에 낸 돈이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대선 후보들이 취약계층의 부채 탕감 등 채무조정 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며 금융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매년 사회공헌 지원 금액을 늘리고 있지만 은행들의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선 이후 상생금융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사회공헌액은 지난해 1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동안 5대 시중은행의 사회공헌액이 전체 은행권의 70% 선을 차지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지난해 전체 은행권의 총 지원액은 1조7000억원까지 늘어나 마찬가지로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이달 안으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회공헌 내용을 공표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금융권의 호실적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5대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4조3349억원)이 1년 새 29% 급증했다.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은 금융사들을 소집해 상생 활동을 압박하고 있다.
은행들의 사회공헌액이 2020년 이후 연평균 12%씩 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는 2조원에 육박할 전망인데 이 수치는 대선 공약 이행 강도에 따라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유력 대선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소상공인, 취약계층의 금융지원 확대를 약속하고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8일 공약집을 내놓는다.
코로나19 당시 정책자금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채무조정부터 탕감에 이르는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작년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방안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은행들이 특히 긴장하는 대목은 지표금리에 원가 등을 반영해 붙이는 가산금리에 제동을 거는 방안이다.
이는 대선 공약으로 검토되고 있다.
현재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매길 때 지표금리에 원가, 위험 프리미엄, 각종 출연금 등이 포함된 법적 비용을 합쳐 금리를 산출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법적 비용을 가산금리에 넣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약속했다.
이 경우 은행의 세전이익은 5~10% 줄어들 전망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날 공약집을 발표했는데, 소상공인 채무조정과 금융지원 강화 방안을 대거 담았다.
매출액이 급감한 소상공인에게 특별융자를 해주고,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자영업 금융 플랫폼을 구축해 맞춤형 금융상품을 제공하면서 소상공인 전용 신용평가 체계를 갖춰 대출 장벽을 낮추겠다고도 약속했다.
또 소상공인 생애주기별 자금 지원을 묶어 체계화하고, 중·저신용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보증하는 구매전용 신용카드를 1000만원 한도로 발급한다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취약계층을 위한 전문은행 필요성도 강조하고 나섰다.
서민을 위한 전문은행을 설립해 신용보증기금,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으로 나뉜 서민금융 기능을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금융 부담을 완화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향후 정책 강도가 어느 정도로 설정될지에 긴장하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로 인해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는데 대출 회수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자산 건전성이 악화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채무 탕감 등 무분별한 금융 지원이 한계 자영업자의 퇴출을 막아 추가 지원이 필요한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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