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지원했더니 좀비 양산…中企정책, 보호중심서 성장위주로"

로버트 앳킨슨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혁신경제학의 대가, 로버트 앳킨슨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이 대기업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소기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혁신과 제도적 수술이 없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경고했다.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나 한국의 혁신 방향과 새 정부 과제에 대해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 한국 경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중국은 자급자족 경제로 전환하고 있고, 미국은 무역적자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성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은 소수의 대기업은 세계적인 수준, 수많은 중소기업은 정체 상태인 '이중속도(Two―Speed) 경제'다.

핵심 경쟁력은 제조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13.9%에 불과하다.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며 독일, 일본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한국 중기가 경쟁력을 잃은 이유는.
▷'좀비기업' 때문이다.

한국은 기업의 성장보다 생존을 우선시한다.

퇴출돼야 할 기업들이 정치·사회적 이유로 계속 지원을 받아 연명하고 있다.

이는 사람이 운동을 안 하는 것과 같다.

당장은 편하지만 건강에는 치명적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지 말라는 건가.
▷매출이나 자산이 적다고 해서 지원하고, 덩치가 크다고 해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중소기업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거다.

규모와 상관없이 성장 의지와 역량이 있는 기업에 지원을 집중하는 '규모 중립적'인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한 새 정부의 우선 과제는.
▷중소벤처기업부를 기업성장부로 개편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성장부는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 인수·합병(M&A) 등을 도와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보조금이나 신용지원 정책도 중소기업 '졸업'에 목표를 두고 재설계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비판했던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유럽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고 본다.

공정위의 임무는 시장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게 아니다.

무작정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혁신을 저해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반성장위원회 같은 것도 민간이 자발적으로 하도록 맡겨둬야지 정부가 강제해서는 안 된다.


―한국도 혁신에 매달려 왔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은 전혀 다른 얘기다.

한국은 제품혁신은 성공했지만, 세계 최초형 혁신이나 혁신 스타트업의 창업·성장은 이루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집단주의와 위계 중심의 문화 그리고 선(先)규제에 기반한 매우 경직된 규제 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네거티브 규제가 일반적이지 않은 한국에서는 규제가 마련된 후에야 신사업 진출이 가능하다.

이런 구조가 공정혁신을 억누르고 있다.


―정부 외에 또 혁신이 필요한 곳은.
▷대학들도 문제다.

한국 대학들은 혁신이나 사업화와 동떨어진 안일한 위치에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인재를 활용해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한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개발(R&D) 프로그램도 확대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는 단순 개발보다 연구 성과를 확산하는 데 더 비중을 둬야 한다.

물론 혁신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 때 했던 것처럼 실패해도 계속 도전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AI가 고령화·생산성 등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AI는 대단히 중요한 기술이다.

대규모언어모델(LLM)에 국한하지 않고 전 산업에 폭넓게 도입돼야 한다.

한국은 AI 기반의 자동화 및 효율성 기술을 농업, 교통, 행정, 유통 등 전 산업에 적용하는 글로벌 선도국이 될 수 있다.

AI를 잘 활용하면 국가 전체 노동생산성을 매년 1~2%포인트씩 높일 수 있을 것이다.

AI는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한국 기술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다만 현재 한국의 AI 관련 법·제도가 이를 저해하고 있다.


―한국이 변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세계 최악 수준의 인구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소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구조여서 생산성 향상을 정체시키고 있다.

고령인구 증가로 이전소득에 의존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생산가능인구의 생활 수준은 더 악화될 것이다.

출생률도 더 떨어질 것이다.

고령층, 청년층 모두 가난해지는 암울한 미래다.



로버트 앳킨슨 회장
혁신경제학의 대가. 기술혁신과 공공정책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도시·지역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백악관과 인연을 맺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는 국가교통인프라재무위원장을 맡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가혁신·경쟁력자문위원회 공동의장을 지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자문위원을 맡았다.


2006년 설립한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기술·정책 혁신 분야 세계 최고 싱크탱크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영국, 캐나다 등 전 세계 주요국 정부에 정책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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