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원 절친’으로 유명한 임수미 대표
계양전기와 손잡고 ‘네오블루 프로젝트’
“숙련공 없어...외노자에 작업 주권 뺏겨”
전 세계적으로 ‘블루칼라 열풍’이 불어닥친 요즘이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 여기에 육체노동 기피 현상이 겹치면서 몸값이 계속 뛰고 있다.
화이트칼라 직종과 달리 인공지능(AI) 대체 우려에서도 자유로워 더 각광받는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억대 연봉을 받는 배관공과 목수 등 사례가 조명받으며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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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작업 중인 임수미 페데스톨 대표 (본인 제공) |
한국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작업 현장에서는 “숙련공이 턱없이 부족해 고령층 작업자나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숨이 커지는 상황이다.
오랜 시간, 젊은 층에서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이 워낙 낮았던 탓에 ‘숙련공 품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국내 블루칼라 직업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이가 있다.
과거 순수 예술 작가로 활동하다 작업자로 전향, 20년 가까이 작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임수미 페데스톨 대표다.
관찰 예능 등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번 얼굴을 비춘 덕에, 대중에게는 정려원·공효진·손담비 절친으로도 유명하다.
그와 함께 한국 블루칼라 직군 현주소를 짚어봤다.
Q.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A. 현재 직업은 ‘생산직 근로자’다.
공간 브랜딩 사업을 하는 페데스톨이라는 기업을 운영 중인데, 말이야 회사 대표이지만 여전히 매일 전국 방방곡곡 현장을 오가며 직접 작업을 한다.
한국에서 조소학과를 전공한 후 시카고 미대 대학원에 입학해 순수 예술 쪽을 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귀국한 이후로는 블루칼라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Q. 순수 예술가에서 블루칼라로 전향한 까닭이 궁금하다.
A. 예술의 기원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예술을 했던 것도 기술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한 것 같다.
실제 작업 과정에서도 비슷한 면이 많다.
순수 예술에서도 필요에 따라 용접도 하고 돌도 깎고 미장도 한다.
손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디지털 등 예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기술 기반 예술 영역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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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미 페데스톨 대표 |
Q.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라 보인다.
A. 어려서부터 그랬다.
6살 때까지 흔히 말하는 ‘깡 시골’에서 자랐다.
놀거리가 딱히 없다 보니 쟁기, 낫, 나무 막대기, 돌멩이를 벗 삼아 놀았다.
목수였던 외조부 영향도 있다.
어린 나는 할아버지의 조수 역할을 너무 좋아했다.
자전거를 고치고 계시면 공구를 가져다드리고 의자를 만들 때면 옆에 쪼그려 앉아 같이 만들고 하는 식이다.
고등학교도 원래는 공고 진학을 꿈꿨지만 집안 반대로 못 갔다.
돌고 돌아 결국엔 이렇게 작업 일을 하고 있다.
Q. 요즘 현장에서 느끼는 국내 블루칼라 분위기는 어떤가.
A. 작업자 대부분 업무 만족도가 정말 높다.
숙련공이 부족하다 보니 수익도 많고 애초에 작업이 좋아 이 일을 시작한 분이 대다수다.
현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 숙련공은 돈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수입이 크다.
몸은 힘들지만 피곤해서 잡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점도 모두가 말하는 장점 중 하나다.
현직 생산 근로자 만족은 높은데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현장에서 숙련공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블루칼라를 낮잡아 보는 젊은 층이 워낙 많았고, 요즘에는 2~3년 하다가 포기하거나 짧은 경력만 믿고 독립해서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이도 많다.
그러다 보니 단순 노동자는 여럿 있는 반면, 현장에서 꼭 필요한 숙련공이 급격히 부족해졌다.
Q. 숙련공 부족,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A. 정말 심각하다.
요즘에는 조선족 등 외국인 노동자 몸값이 오히려 한국인보다 비싸졌다.
그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또 할 수 있는 사람이 외국인 노동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값싼 임금을 받으며 이른바 ‘험하게’ 굴렀던 외국인 노동자가, 이제는 어느덧 숙련공으로 성장했다.
시키는 일을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 기술과 노하우가 쌓인 것이다.
이제 갑을 관계가 바뀌어 오히려 본인들 몸값을 높여 부른다.
일을 훨씬 빠르게 잘하니 비싼 돈을 주는 게 당연하다.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외국인 노동자만 늘고 한국인 숙련공이 줄어드는 현 상황이 계속되면 국내 작업 현장은 ‘주권’을 잃을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멕시코인이 사라지면 국가 경제가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처럼 외국인 작업자가 중요 현장을 모두 꿰차게 되면 한국은 더 심각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특성화 고등학교와 기술 전문 폴리텍대학교 같은 교육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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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블루 앰버서더로 선정된 부천공고 김민규 학생. (계양전기 제공) |
Q. 블루칼라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A. 숙련공 부족과 블루칼라의 낮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네오블루칼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내 토종 전동공구 기업인
계양전기와 손잡고 진행하는 캠페인이다.
미래 숙련공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는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이미 작업 현장에서 훌륭히 역할을 수행하는 현직 숙련공에 이르기까지. 이들 중 ‘네오블루 앰버서더’를 선정해 각종 공구를 지원하고, 인터뷰 영상을 만들어 블루칼라 인식을 전환하는 프로젝트다.
다양한 분야의 블루칼라 청년을 직접 만나 조언도 해주고 기술도 공유한다.
단순히 일회성 프로젝트를 넘어,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숙련공과 직접 대화하고 지원을 해나갈 예정이다.
천천히 오랫동안 지원을 이어나가다 보면 블루칼라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이 점차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숙련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꾸준함과 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다양한 상황에 놓인 현장을 오래 다녀봐야 경험이 쌓인다는 점에서 ‘꾸준함’이, 작업 현장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소통·협업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인성’이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나만 잘났다고 막무가내로 자기 일만 하다 보면 작업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요즘에는 현장 기술을 알려주는 단기 학원도 여럿 있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답은 늘 현장에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열정과 목표 의식만 있다면 무작정 인력사무소나 현장을 찾아가 일을 달라고 조르는 것도 방법이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테다.
오히려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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