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불안에 IPO 시장도 '냉각'…공모가 낮추고 상장 철회

증시 부진 여파에 기업공개(IPO) 시장 투자심리도 급격하게 식으면서 공모 기업들의 공모가가 낮아지고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8일 IR 컨설팅 전문기업 IR큐더스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IPO를 통해 신규 상장한 기업(스팩 제외) 23개사 중 8개사가 공모가를 당초 회사가 제시한 희망 범위(밴드) 하단 이하로 확정했습니다.

공모 기업은 상장 주관회사와 기업 가치 평가를 통해 희망 공모가 범위를 산정합니다.

최종 공모가는 일반 청약 이전에 희망 공모가를 참고한 기관 투자자 수요 예측 조사를 통해 결정됩니다.

올해 신규 상장한 기업 3곳 중 1곳가량이 기관 수요예측 과정에서 공모가 산정 눈높이를 낮춘 셈입니다.

2개사(리츠 포함)는 밴드 내에서, 13개사는 밴드 상단 이상에서 최종 공모가를 확정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IPO 시장 분위기와는 딴판입니다.

지난해 신규 상장한 기업 94개사 중 82%인 77개사는 공모가를 밴드 상단 이상에서 확정했습니다.

밴드 이하로 공모가를 확정한 곳은 12개사로 전체의 12.8%에 불과했습니다.

올해 증시에 입성한 코스닥 상장사 중 공구우먼, 모아데이타, 노을, 스톤브릿지벤처스, 바이오에프디엔씨 등 5개사는 밴드 하단을 11∼23% 하회하는 가격에 최종 공모가를 확정했습니다.

브이씨, 나래나노텍, 애드바이오텍 등 3개사의 최종 공모가는 밴드 하단으로 결정했습니다.

저조한 수요예측 결과에 상장을 철회하거나 뒤로 미루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달 코스피 상장을 계획 중이던 SK쉴더스는 기관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지난 6일 금융감독원에 IPO 철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SK쉴더스 관계자는 "글로벌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해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며 "시장 상황을 고려해 기업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에 상장 추진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보다 앞서 현대엔지니어링과 약물 설계 전문기업 보로노이도 기관 투자자들의 저조한 참여에 수요예측 이후 IPO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기업 대명에너지는 당초 3월 코스닥 입성을 목표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뒤 한 차례 공모를 철회했다가 눈높이를 낮춰 상장에 재도전했습니다.

공모가 밴드는 2만5천∼2만9천 원에서 1만5천∼1만8천 원으로 대폭 낮아졌습니다.

IPO 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올해 상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상장 차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장 상반기 IPO '대어'인 원스토어가 오는 9∼10일 기관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습니다.

원스토어는 지속되는 영업 적자와 앱마켓 내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컬리는 지난 3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으나 고질적 적자에 불안정한 지분 구조 문제까지 더해져 심사 과정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외에도 쏘카, 현대오일뱅크, 카카오모빌리티, CJ올리브영 등이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경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매크로(거시) 불안 때문에 공모 기업의 적정 평가가치(밸류에이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며 "작년에는 쉽게 인정받던 밸류에이션이 올해에는 통용되지 않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글로벌 긴축 기조에 증시가 부진하면서 공모 기업이 기업 가치 평가에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할 상장 기업의 주가가 크게 떨어진 영향을 받는 모습입니다.

특히 신규 상장 기업들은 대개 전통적 산업보다는 성장 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만큼 최근 금리 인상에 따른 성장주 조정의 타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유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유 연구원은 "작년에 상장 예심을 청구한 기업 중 아직 승인을 받지 못한 종목도 많다"며 "다만 이 기업들이 예비심사를 통과해서 공모한다고 해도 원하는 밸류에이션을 받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시장 분위기로 보면 뚜렷한 거시 경제 개선이 없는 한 공모 시장에서 작년 같은 활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밸류에이션을 낮추든가 비상장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분위기가 바뀌는 시점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상장을 추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 고진경 기자 / jkkoh@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