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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면] 지도 그리기의 즐거움
기사입력 2021-07-3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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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집하다 보면 가장 하기 싫은 게 지도 작업이다.

전쟁, 무역, 기후, 경제 등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지도는 꼭 필요하다.


이 중에서 지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책이 전쟁 책이다.

전쟁 이야기를 좋아해 책을 많이 내다 보니 지도 작업에도 이골이 났다.

원본 지도가 조악하면 일러스트 발주부터 새롭게 해야 하고 지명, 내용 요소를 죄다 번역해서 일일이 그 자리에 앉히는 일이 귀찮고 번거롭다.

지명이 깨알같이 많을 경우 A3 용지에 크게 지도를 출력해서 손으로 일일이 써줘야 디자이너가 작업할 때 혼동을 줄일 수 있다.

독자를 위해 하긴 하지만 지도의 의무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지도가 없는 책도 불편하다.

최근 중국 고대 진한(秦漢) 교체기와 초한대전을 다룬 책을 만들다가 지도가 몇 장 없어서 답답했다.


무려 30년을 이 주제를 연구해 온 저자가 수차례 현지 답사를 통해 항우와 유방의 일진일퇴를 고증하면서 역사 기록과 실제가 다르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해서 신나게 서술하고 있는데 지도가 충분치 않으니 재미가 반감되었다.

허, 이거 참 답답하기 그지없다고 푸념하다가 직접 우물을 파기로 했다.


궁금증을 일으킨 건 다 쓰러져 가던 진제국의 군대와 진나라의 폭정에 맞서 초나라를 부활시키자며 들고 일어선 진승·오광의 반란군이 맞붙은 희수 전투였다.

나중에 유방과 항우가 맞붙은 팽성대전, 해하대전에 비해 덜 알려진 전투이지만, 희수 전투도 석 달 사이에 진나라와 초나라 수십만 양군이 세 차례나 맞붙은 끝에 초나라 장수 주문(周文)이 자결한 엄청나게 크고 무시무시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그때까지 승승장구하던 초나라의 주문 군대는 장함(章邯)이 이끄는 진나라 군대에 연이어 세 번을 패하는데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진나라의 군대가 왕성을 수비하는 최정예군이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요새와도 같은 지형을 이용해 유리한 전투를 벌였다는 점이다.

동으로는 희수(희水)를 해자로 삼고 서로는 파수(파水)를 둑으로 삼으며, 북으로는 위하(渭河)에 의지하고 남으로는 여산(驪山)을 등지고 있는 이곳은 진나라의 1차 방어선인 함곡관이 뚫렸을 때 수도 함양을 지켜주는 최후의 장벽이자 진나라 주둔병의 요충지였다.

초나라 반군은 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 것이다.


그 요충지는 어디이고 어떤 모양인가. 나는 어서 이것을 지도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문제는 지형과 물길이 정확하게 그려진 당시의 중국 고지도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에 그려진 영어로 된 중국 지도를 하나 발견했는데 위하와 파수, 희수의 물길이 매우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걸 크게 출력해서 책의 설명에 따라 위치를 찍어 보니 타원형으로 긴 요새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희수와 파수가 합류한 위하라는 큰 강이 두 차례나 90도 각도로 꺾이는 바람에 그런 지형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속이 좀 후련해졌다.

내가 직접 점을 찍고 선으로 이은 이 지도는 책을 낼 때 독자의 편의를 위해 다시 다듬어서 실어놓았다.


지도를 그려 보니 그간 알 수 없었던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책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지도는 완성된 형태로 주어진다.

거기엔 병사의 주둔 위치, 진격로 등 공간적 형세만 나타나 있지 시간적 흐름과 순서까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그런데 지도를 직접 그려보면 이 시간의 흐름과 순서가 읽히면서 위급했던 당시의 결정적 순간들을 훨씬 환하게 복기해 볼 수 있다.

그러니 책에 실린 지도를 자기 손으로 직접 그려보는 게 독서의 큰 묘미가 될 수도 있겠다.


지금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지질학적 변동을 다룬 책을 만들고 있는데 이 책도 지도가 몇 장 없다.

그래서 구글맵을 상시적으로 띄워놓고 지도 삼매경에 빠져드는 요즘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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