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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은퇴? 진흙탕 구르기?…베트남 영웅 박항서 거취는
기사입력 2021-06-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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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46]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베트남이 월드컵 진출을 위한 최종 예선에 진출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아랍에미리트(UAE)를 맞아 3대2로 석패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는 실패했지만, 박항서 감독 밑에서 차곡차곡 쌓은 승점을 보태니 와일드 카드를 따내는 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한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이란 쾌거를 일궜습니다.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을 최종 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과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왼쪽 둘째)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박 감독은 단연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일 것입니다.

박항서호는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세 번의 대회에서 모두 성과를 냈습니다.

23세 이하 대표팀을 데리고 나간 2018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팀을 결승에 올렸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을 맞아 눈보라가 휘날리는 혈전 끝에 아쉽게 패했죠.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팀을 준결승까지 이끌며 난생 처음 4강에 진입했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 베트남 현지에서 중계팀조차 파견하지 않았던 대회였습니다.


화룡점정은 2018년 말 펼쳐진 '동남아의 월드컵' 스즈키컵이었습니다.

여기서 1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베트남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죠.
우승 직후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의 조국을 사랑해 달라"던 박 감독의 기자회견은 감동이었습니다.

당시 저와 저의 가족은 하노이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지난 16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자벨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G조 최종전 베트남과 아랍에미리트의 경기에서 베트남 응우옌 틴엔린이 첫 번째 골을 넣고 있다.

이날 베트남은 2-3으로 UAE에 패했지만 조2위 자격으로 역대 첫 최종 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사진=(두바이 VNA) 연합뉴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여파로,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로 그때와 지금 한국과 베트남의 감정은 예전만큼 애틋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박 감독은 보란듯이 또 성과를 냈습니다.

사실 아무리 명감독이라 해도 출전하는 모든 대회마다 이렇게 성과를 내기는 힘든 법입니다.

새삼 박 감독의 지도력이 놀랍게만 느껴집니다.


최근 박 감독의 거취가 또 화제에 올랐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박 감독의 "베트남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발언이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박 감독이 팀을 최종 예선까지 올려놓은 것으로 자신의 베트남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내용으로 와전되며 유튜브와 온라인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매니지먼트사가 서둘러 등판해 "내용이 왜곡됐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관심은 뜨겁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베트남이 최종 예선에서 선전해 티켓을 따고 카타르까지 날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박 감독이 내년 1월까지 임기만 마무리하고 지휘봉을 내려놓는다면 '영광의 퇴장'이 될 수 있습니다.

"팀을 더 이끌어 달라"는 베트남 팬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실패가 없었던 명장으로 이름을 오래오래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 감독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독이 든 성배'를 마실 것이라 전망합니다.

조건이 맞으면 아마도 재계약을 할 거란 얘기입니다.

최종 예선 탈락의 아픔을 감수하는 선택을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박 감독과 한 몇 번의 인터뷰가 떠오릅니다.

그는 항상 "지금까지 베트남팀을 맡아 이렇게 끌고온 것만으로도 내 축구 인생에서 충분한 성공이다.

나는 축구감독으로의 본분으로 충실할 뿐이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애쓴다.

난 축구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정치나 여론, 이런 것엔 둔감한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사실 정점에서 내려오려면 지난 스즈키컵 우승 직후가 적기였습니다.

베트남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도전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고 또 한 번 성과를 냈습니다.

그는 정상에서 떠나 영웅이 되는 것보다는 실패해 원성을 듣더라도 흙바닥을 구르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박 감독을 보면 떠오르는 두 번의 이벤트가 있습니다.

호찌민에서 열린 신한금융그룹 기자간담회 현장이었습니다.

박 감독은 신한금융그룹 광고모델이란 이유로 초청받아 상석에 앉았습니다.

그를 소개하는 멘트에 장내는 폭탄이 터진 듯 한바탕 난리가 났고 점심시간에 벌어진 광경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습니다.


수백 명을 수용하는 원형 테이블이 만드는 사이 공간에 사람들이 뱀처럼 줄을 서서 박 감독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박 감독 표정에서 스타의 거만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남은 건 멋쩍게 사인을 해주는 수줍음이었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스즈키컵 우승 직후 박 감독의 처신입니다.

현 주석인 응우옌쑤언푹 당시 베트남 총리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일렬로 늘어서 메달을 받던 박 감독과 선수들을 일일이 포옹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정신 없는 사이 총리 옆 누군가가 박 감독에게 메달을 걸어주려 하자 깜짝 놀란 푹 전 총리가 메달을 낚아채 박 감독 목에 걸어줍니다.

그리고 진한 포옹을 나눕니다.

박 감독은 정중하게 목례를 건넵니다.


이후 총리와 박 감독이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직전 푹 전 총리는 박 감독을 격하게 포옹합니다.

박 감독은 세 번에 걸쳐 굽신거리며 인사를 합니다.

당시 제 느낌은 상사에게 깨지는 부하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겸손이 몸에 배었다는 것입니다.

절정의 순간에서 겸양의 태도를 잃지 않을 정도로 그는 훈련된 사람입니다.


박 감독이 베트남에 오기 직전 그의 축구 인생은 은퇴 기로에 놓여 있었습니다.

별 볼일 없던 감독이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베트남에서 대박을 쳤습니다.

아마도 박 감독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상황이었다.

지키기보다는 도전하자."
스즈키컵 우승 직후 베트남 방송사 중계진이 '깜언(감사합니다) 박항서, 깜언 한국'을 연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영웅 박항서를 보내준 한국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과 베트남은 특수 관계였습니다.


만약에 박 감독이 팀을 월드컵으로 보내지 못하더라도 베트남 언론은 '깜언 박항서, 깜언 한국'을 여전히 외칠 수 있을까요. 불가능에 가까웠던 과제를 해내지 못했다고 박 감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면 한국 팬들은 용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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