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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50만원, 조정훈 30만원…표심흔드는 달콤한 유혹 기본소득, 문제는 돈
기사입력 2021-06-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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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 포커스 ◆
남녀 모두 공정하게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만 노동한다.

도시민도 돌아가며 2년씩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은 늘 넉넉하고 화폐·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는 대신 국민은 공공에서 만든 주택과 음식을 보장받는다.

영국의 16세기 인문주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 묘사한 섬나라 모습이다.

당시 유럽 군주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영토를 늘리는 데에만 전념했다.

국민은 땅을 빼앗기고 심한 노동을 강요당했고 불필요한 전쟁에 동원됐다.

백성은 희생됐으며 남은 이들은 생존 앞에 굶거나 무언가를 훔쳐야 하는 세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관이었던 모어는 국민을 핍박하게 만드는 법률과 형벌을 없애고 대신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본소득 개념을 현실정치의 대안으로 내놨다.


500년 전 모어의 고민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불공정·불평등 해소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며 문재인정부가 실행한 소득주도성장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 격차, 최고 스펙을 갖추고도 실업을 걱정하는 청년 세대의 취업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 등 문제는 여전하다.

약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구분 없이 저마다 기본소득제를 앞세우며 모어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는 이유다.


매일경제신문은 기본소득 논의의 허와 실을 따져보기 위해 15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 정책을 총정리·비교했다.

분석 대상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기본소득,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정소득이다.


◆ 이재명표 기본소득, 장기적으론 증세 방점


네 가지 정책은 전 국민(기본소득) 또는 광범위한 계층(안심소득)에게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준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지급한 소득으로 내수를 활성화하고, 각종 복지정책에서 수혜 계층을 선별하는 예산이 최종 지급예산보다 커지는 비효율을 해결하겠다는 인식도 공유한다.

차이는 재원 마련 방안이다.


"단기에는 예산 절감으로 25조원(1인당 50만원)을 확보해 25만원씩 연 2회 지급으로 기본소득 효과를 증명하고, 중기로는 기본소득의 국민 공감을 전제로 해 조세감면(연 50조~60조원) 축소로 25조원을 더 확보해 분기별로 지급하며, 장기로는 국민의 기본소득용 증세 동의를 전제로 탄소세, 데이터세, 로봇세, 토지세 등 각종 기본소득 목적세를 점진적으로 도입·확대해가면 된다.

" 이 지사의 페이스북 글 내용이다.


이 지사의 3단계(연간 단기 50만원·중기 100만원·장기 600만원 지급) 기본소득은 우선 낭비성 지출을 찾아내 한 해 25조원에 달하는 단기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도록 구성됐다.

당선되면 곧장 대대적인 지출 구조조정에 돌입하겠다는 공약인 셈이다.

이 지사와 함께 기본소득 정책을 설계한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 재원을 위한 구조조정 방안은 이미 상당 부분 완성됐다.

기존 복지제도는 건드리지 않고 토건 분야 등에서 낭비 예산을 찾은 것"이라며 "중장기 기본소득은 누진적 증세를 놓고 국민에게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조 의원의 기본소득과 오 시장의 안심소득, 유 전 의원의 공정소득은 기존 복지정책 지출 예산을 대거 활용한다.

다만 조 의원은 아동소득처럼 고소득층일수록 많은 혜택을 보는 정책을 발굴해 폐지하는 것이 골자며, 안심소득은 복지체계 전반을 다시 구성해 재정 효율화를 추구한다.

이 지사가 중장기적으로 대규모 증세를 계획한 것과 달리 나머지 두 방안은 증세 의존도가 낮다.

조 의원은 근로장려세제·자녀장려금처럼 기본소득과 취지가 유사한 세금 환급 항목을 소요 재원의 절반가량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며, 오 시장은 증세 없이 기존 예산 범위 내에서 설계할 예정이다.


보편·선별복지 논란을 불러온 지급 방식 차이는 현재 표면적으로 논쟁이 가장 치열한 부분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계층에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며, 안심소득은 소득이 적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계층에 그 차익만큼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지사 측은 지급 방식에서는 접점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지급 방식은 보편적이지만 재원 마련 과정에서 누진적 증세를 통해 선별성을 띠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소득 파악 체계가 발전해 징수·배분액수를 일괄 계산할 수 있게 되면, 굳이 고소득층에게 돈을 거뒀다가 다시 주는 절차를 생략하고 납세액을 깎거나 소액의 지원금을 줘도 된다"며 "세부적인 차이야 있겠지만 안심소득과 유사한 형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野는 증세 없는 복지재원 수술


오 시장, 유 전 의원이 각각 안심소득·공정소득으로 재포장한 기본소득안은 개념적으로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에 가깝다.

최근 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장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김낙회 전 관세청장,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차관,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등 전직 경제 관료 5명이 저술한 '경제정책 어젠다 2022'(21세기북스)에서도 '부의 소득세'를 제안했다.


다섯 명의 '빅샷' 관료가 제시한 부의 소득세가 기존 이론과 다른 것은 현실화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처음 제시했다는 점이다.

김 전 청장은 부의 소득세율을 50%로 정하고, 소득이 없는 개인에게 중위소득의 60%에 해당하는 월 50만원(만 18세 미만은 3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연소득 1200만원을 기준으로 적게 벌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더 많이 벌면 세금을 내게 된다.

소득이 0원인 사람의 과세표준은 -1200만원이다.

여기에 세율 50%를 곱하면 내야 할 세금은 -600만원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600만원을 돌려주는 것이다.


부의 소득세가 그나마 대선주자들의 '백가쟁명'식 기본소득에 비해 합리적인 부분은 재원 조달 방안을 처음으로 구체적 숫자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의 소득세를 도입하기 위해선 최소 97조1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각종 급여와 노인연금, 아동수당 등 현금성 복지를 모두 없애면 136조6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부의 소득세 핵심은 소득 보전과 세제 개편 등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정치권의 무분별한 포퓰리즘으로 난립하는 복지제도의 재정립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전 청장은 "국민적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영국에서 세액공제와 주거·보육 수당을 지원하는 '유니버설 크레디트' 제도가 중첩된 복지제도를 개선한 선례"라며 "결국 국민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가 불가역적이라는 건 상식이다.

일단 준 건 다시 빼앗지 못하는 게 현대 정치의 치명적 한계다.

생전 처음 보는 안심소득을 줄 테니 원래 받던 구직급여, 기초연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수급자들 반응이 어떨까. 열심히 일해도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도 올릴 수 없는 기초수급자는 선별적 복지를 폐지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쉽다.

진보 진영 정치인을 비롯해 사회시민단체에서조차 여전히 기본소득보다는 전 국민 고용보험과 같은 복지 확대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를 주장하는 이유다.


◆ 해외 실험 사례 살펴보니


기본소득제 논쟁에 불이 붙자 이 지사와 대선후보 경쟁을 벌이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알래스카 빼고는 그것을 하는 곳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런 이낙연 전 대표의 말은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정의하는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개인 기반 등 기본소득의 네 가지 요건을 적용할 경우 맞는 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기본소득 실험실(BIL·Basic Income Lab)은 기본소득의 주요 특징으로 보편성(universal), 무조건성(unconditional), 정기성(periodic), 현금 지급(cash payment), 개인 기반(individual) 등을 꼽았다.


쉽게 말해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선별해 지급하는 게 아니며 여건에 상관없이 모두 지급하고 1회성이 아니며 연이나 월 단위로 정기적이고 가구가 아니라 1인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가 언급한 알래스카주는 1976년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 일부를 활용해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조성했으며, 1982년부터 기금 수익금 일부를 주 거주 기간 1년 이상인 모든 주민에게 매년 지급한다.

금액은 2020년에는 992달러(약 110만원)였으나 2019년 1606달러(약 178만원), 2018년 1600달러(약 177만원), 2017년 1100달러(약 122만원), 2016년 1022달러(약 113만원) 등으로 작년을 제외하면 최근 수년간 1000달러 이상이었으며, 2015년에는 2072달러(약 230만원)로 예년보다 높은 편이었다.


알래스카 외에 마카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 배분 계획(Wealth Partaking Scheme)'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주민에게 매년 현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영주권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지급 금액에 차이가 있고, 해당 계획의 근거 법안이 1년짜리여서 매해 승인이 이뤄져야만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래스카와는 다르다.

다시 말해 무조건성과 개인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셈이다.


아직도 지급을 실시하는 곳 외에 실패 혹은 중단한 국가도 있다.

핀란드가 2017년 실업자 중 무작위로 2000명을 선발해 월 560유로를 지급하다 2019년 중단했고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같은 시기 저소득층 4000명에게 월 1320캐나다달러 지급을 실험했으나 결국 재원 부족으로 1년 만에 중단했다.


◆ 500년 전 유토피아 꿈 현실화되려면


코로나19로 한국 사회의 곪아가던 양극화 문제가 다시 상처를 드러내면서 '돈도 없는데 기본소득은 소설'이란 단편적 반발은 내년 대선 정국에선 먹혀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진짜 사회적 약자에게 현실적 도움이 되는 정책인가. 500년 전 모어의 유토피아는 어디까지나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주의적 섬나라에서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이재명·오세훈·유승민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를 뒤집어엎겠다고 선언한 주자는 아직 없다.


이렇다 보니 현재의 복지제도를 더 발전시켜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은 모두 가성비가 좋지 않은 현금성 복지"라며 "북유럽식 복지국가는 질 좋은 서비스 복지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재인정부 초기 개혁을 시도하다 지금은 장롱 속에 묻어둔 국민연금만 해도 개혁이 시급하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노령연금 평균 수급액은 월 54만1000원이다.

노후 보장은커녕 생활비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을 정도다.

연금이 제대로 된 노후 보장 역할을 하기 위해선 더 내고 더 받는 유럽식 구조 개혁이 불가피하다.

고용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고용보험은 작년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 속에서 실업급여 등으로 서민층 생활을 책임지는 버팀목이다.

작년 고용보험기금의 적자 규모는 5조3292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7월부터는 혜택이 더 커진다.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등 12개 특수고용직에 고용보험이 적용된다.

혜택받을 사람은 늘어가는데 현재의 고용보험기금 구조상 한계에 부닥칠 게 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500년 전 소설 속 빈곤이 없는 섬나라 '유토피아'는 재미있고 도전적이지만 허구적이다.

국민연금·고용보험 개혁은 인기는 없지만 생생한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양심 있는 정치인만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숙명적 책임이기도 하다.


[이지용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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