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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퇴근 주말 있잖아요"…그들은 어쩌다 번아웃 됐나
기사입력 2021-03-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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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안녕하세요. '번아웃' 경험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세요?"(기자)
"저는 금융사 인턴입니다.

취업 준비, 수업 듣기, 학회 일 등이 겹치면서 폭식 증상에 우울감·무기력감이 오면서 한 달간 집에서 안 나온 적이 있습니다.

"(김 모씨)
"아…아직 회사 생활을 시작도 안 했는데요?"(기자)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와 버렸다.

'어린 나이에 번아웃은 무슨….' 근데 시작일 뿐이었다.


번아웃 증후군으로 고통받은 경험을 호소한 직장인 상당수가 입사한 지 5년 안팎에 불과한 어린 회사원이었다.

심지어 취업준비생, 대학원생의 번아웃 경험담도 적지 않았다.

매일경제 '어쩌다 회사원'팀이 최근 음성채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클럽하우스'에 직접 방을 만들거나 관련 방에 참여해 직장인들의 번아웃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다.

클럽하우스 주 사용 연령층이 20·30대다 보니 나타난 왜곡 현상일 수 있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인사관리(HR) 전문가 등에게도 팩트 체크를 해보니 결론은 같았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밀레니얼은 어떻게 번아웃 세대가 됐는가'라는 책이 출판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미국 밀레니얼보다 어린 나이부터 강도 높은 무한경쟁을 겪은 우리나라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어쩌면 더 이른 나이에 훨씬 심각한 '한국형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 국제질병분류에 이름 올린 '번아웃'


번아웃(Burnout) 증후군은 2019년 5월 국제질병분류 11번째 버전(ICD-11)에 새로 추가된 질병의 원인(인자)이다.

내년부터 발효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한다.

만성피로감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에서 시작한다.

이는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해 계속 쌓이는 악순환을 낳고 결국 적극성·주도성을 잃게 된다.

과도한 습관성 행동도 보인다.

하루 몇 시간씩 SNS·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심리로 폭식·폭음을 하거나, 온라인 쇼핑에 집착하는 게 대표적이다.

끊임없이 업무 생각만 하는 것도 습관성 행동에 포함된다.


업무·회사·동료에게 거부감·부담감·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출근할 때 회사에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월요병'의 악화된 형태다.

두통·불면증·복통·호홉곤란 같은 신체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 자기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업무 중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의도치 않게 기분 나쁜 말을 내뱉는 경우가 해당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거두면서 나타난 냉소 현상이다.

서비스업 종사자 중 기계적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상담원이나 직원들에게서 종종 목격된다.


◆ 정신과 입원에 스마트폰으로 현실도피


20·30대 직장인은 어떤 환경에서 번아웃을 겪을까. 정보기술(IT) 회사에 근무 중인 30대 초반 개발자는 작년 상반기 내내 '크런치 모드'였다.

크런치 모드란 IT업계에서 주로 쓰는 말로 제품 출시 전 완성도를 높이고자 밤낮없이 근무하는 형태다.

근데 프로젝트가 끝나가는 시점에 다음 프로젝트 담당자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것마저 맡게 됐다.

더 이상 크런치모드에 들어갈 힘이 없던 그는 동료들로부터 '출세하고 싶어 안달 났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는 심박·호흡·혈압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지러움증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회사에 요청해 개발에서 재무 쪽으로 팀을 옮겼고, 2년째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고 있다.


전문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한 20대 중반 직장인 A씨는 입사 후 여러 번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입사 직후에는 직속 상사가 일을 가르쳐주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성 불면증에 시달렸고, 작년에는 결재를 올릴 때마다 글자 하나, 문구 하나 지적을 당하다 보니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한 달간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해야 했다.

A씨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내 탓을 했다.

못 배운 탓. 가르쳐줘도 못 알아듣는 탓. 그러다 보니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하위직 공무원 B씨는 하루 몇 시간씩 SNS로 현실도피를 했다.

B씨는 "매년 1~2월 업무 분장이 이뤄지는데, 상급기관에서 업무가 내려오면 1차 접수하는 일을 주로 맡는다.

그런데 각 부서 중간직 공무원들이 서로 업무를 안 맡으려 '핑퐁게임'을 하다 보니, 하위직들은 두 달 내내 이 부서 저 부서에 치이기만 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잠시나마 무력감을 잊기 위해 SNS를 한다는 게 점점 중독이 돼 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 한 20대 후반 여성 직장인은 상사가 자기를 남자 동료와 비교해가며 "군대를 안 다녀와 사회생활을 모르는 것 같다" "여직원들은 마음이 약해 뭐라고 하면 삐지기나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후 회사 생활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채 이직을 넘어 이민까지 알아보고 있다.


◆ '회사는 퇴근도 있고 주말도 있잖아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MZ세대 직장인의 '맷집'이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도체 회사의 한 팀장은 "번아웃에는 '최대한 다 해보고'나 '야근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란 전제가 깔려야 하는데, 요즘은 기본 근로시간만 일하고 번아웃됐다고 하는 젊은 직원이 많다"고 토로했다.

조기 번아웃 원인의 힌트는 신입이 입사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면 얻을 수 있다.


외국에서 이공계 석·박사를 마친 20대 후반 C씨는 "학사 때부터 쉬지 않고 달려와 석·박사 과정을 연구원으로 지내다 보니, 정작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번아웃 증상이 찾아왔다"며 "원래 병역특례로 회사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할 예정이었지만, 내 건강을 위해 현역으로 군대를 가려 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응용통계·데이터분석 전공 대학원생 D씨는 "빨리 취업하고 싶은 첫 번째 이유가 퇴근이라는 게 있어서고, 두 번째가 주말이라는 게 있어서"라며 대학원 생활의 고충을 토로했다.

D씨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주중·주말 할 것 없이 새벽 3~4시에 귀가한다"며 "주변 대학원생들 대부분이 약을 달고 산다"고 귀띔했다.


MZ세대의 부모·상사가 속한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적 고성장기를 경험했다.

일자리가 많았고, 열심히 일하면 내 집 마련도 어렵지 않았다.

반면 MZ세대는 무한경쟁 시대를 살지만, 노력한 만큼의 결과물이 주어질지는 미지수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후배 직원에게 파이팅만 외치고 귀가한 한 교육업체 간부 최 모씨. 집에 오니 올해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선행학습을 마쳤다.

벌써 며칠째 밤에 제대로 못 자고 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우리나라 MZ세대에게서 나타나는 조기 번아웃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유섭 기자 / 김금이 기자]

'탈진' 극복법은 단 하나, 환경을 바꿔라


'번아웃 증후군' 의심된다면
과도한 업무·통제에 더해서
미약한 보상으로 유발되기도
개인 문제로 치부하지말고
업무조정·병가·부서이동 등
조직 차원서 적극 배려해야
'직무 스트레스'라는 의학적 정의에서 보듯 번아웃(탈진) 증후군의 원인은 직장과 직장문화다.

먼저 높은 직무 요구가 있다.

일 잘하는 직원에게 일이 몰리는 경우다.

같은 맥락에서 조율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하게 넓은 업무 범위도 번아웃을 유발한다.

상사의 지나친 통제와 이로 인해 아무런 의사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환경도 정신적 피로감을 불러온다.

보람을 못 느끼는 게 상황을 악화시킨다.

업무량 대비 미흡한 보상도 탈진·무기력증의 원인이다.


업무적 강박 내지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졌거나, 조직으로부터 배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직원에게서 먼저 나타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번아웃이 입사 5~10년 차뿐만이 아닌 사회초년생은 물론이고 인턴, 취업준비생, 대학생 심지어 고등학생에게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은 "병원을 주로 찾는 건 젊은 직장인이지만, SNS에 올린 글에 공감하는 이들 중에는 대학생·고등학생도 많다"고 소개했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저자이기도 한 안주연 원장은 "실제 교육 분야 논문을 보면 '학업 번아웃' 이야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번아웃 극복법은 단순하다.

고통을 유발하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업무 강도 조정, 병가 사용, 일정 조정, 부서 이동 등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개인 입장에서, 그것도 사회초년생이 이러한 요청을 하기란 매우 어렵다.

안 원장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조직이 나서야 한다.

직원 애로 사항을 구체적으로 듣고, 작은 거라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직원에게 희망을 주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인적자원관리(HR) 전문가 최두옥 베타랩 대표는 "'대리급' 직장인을 보면 아침 일찍 나와 저녁 먹고 퇴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주말 근무도 많다"며 "문제는 그게 필요한 일을 많이 하는 게 아니고, 조직 의사결정 체계가 위계적이다 보니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보고한다거나, 부서 간 정보 요청·공유가 원활하지 않아 자료 요청·취합·정리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번아웃은 개인이 아닌 조직의 문제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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