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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예술…한지 태운 그을음, 線이 되다
기사입력 2021-02-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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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를 형상화한 `Blue Mountain`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김민정 작가(59)의 손가락 지문이 사라지고 있다.

촛불과 향에 한지를 태워 재빨리 손끝으로 끄기 때문이다.

그을린 자국은 깊은 선이 된다.

다양한 형태로 그을린 한지 수만 장을 배접지(뒤에 붙이는 두꺼운 종이)에 붙여 '불의 예술'을 만든다.


4년 만에 열린 서울 갤러리현대 개인전 'Timeless(영원한)'에서 만난 그는 "화선지에 먹으로 선을 아무리 그려도 원하는 게 안 나와 불의 힘을 빌렸다"며 "태운 선이 너무 깊고 아름다웠다.

그을음에서 100가지 넘는 색이 나온다"고 말했다.


방사형 선으로 황금비례를 보여주는 `Nautilus(앵무조개)`.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2000년대 초부터 작업에 도입한 불은 그의 잡념도 태웠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상태로 작업하면 외로움도 잊는다.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서 강아지와 사는 그는 "작업할 때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며 "시간이 빨리 가고 머리도 맑아진다.

인생이 너무 길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수행에 비유된다.

스스로 종이와 불의 중재자가 돼 엄청난 집중력으로 한지의 1㎜를 태운다.

그는 "종이와 불을 쓰는 게 아니라 섬긴다"며 "특히 한지는 워낙 약한 재료라서 귀하게 다룬다"고 했다.

그의 인내심과 정성이 세계인을 홀리고 있다.

2018년 영국 런던 화이트큐브, 2019년 독일 노이스 랑겐파운데이션, 2020년 뉴욕 힐아트파운데이션 전시에서 '한국 단색화 열풍 이후 주목할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세계적인 출판사 파이돈이 최근 발간한 동시대 미술서 '비타민 D3 : 오늘의 동시대 드로잉 베스트' 대표 작가로도 선정됐다.

특히 외국 관람객은 그의 작품 재료인 한지에 관심을 보인다.

연약해 보이지만 캔버스보다 질기고 오래가는 재료가 바로 한지다.


"수천 년 세월을 견디는 한지는 인간보다 긴 생명을 가지고 있어요. 강인한 데다 숨을 쉬어요. 습기가 차면 종이가 울고 건조한 데 가면 쫙 펴지죠. 입체감과 부피감이 내 피부의 연장선 같아서 정신세계를 담아요. 종이는 인간 역사를 남기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죠."
종이는 유년시절 그의 장난감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광주 인쇄소에서 폐지로 딱지를 만들어 놀았다.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르네상스 미술이 궁금해 1991년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국립미술원에 유학을 갔지만 결국 한지에서 답을 찾았다.


"1990년대 초 사진과 비디오 작업이 유행했는데 유학을 와보니 기계를 잘 못 다뤄서 하던 것을 계속해야겠더라고요. 한지에 수묵·채색 추상화를 그리다가 2000년 들어 한지를 태우는 작업을 했죠."
한지 자체를 물감이자 수행과 명상의 무대로 사용한 작품 30여 점을 이번 개인전에 펼쳤다.

태운 한지 수만 개를 일일이 아교로 붙여 다양한 리듬감을 만드는 노동집약적 작품들이다.


김민정 Pieno di vuoto(비움의 채움)
가운데가 뚫린 원형 한지를 겹쳐 꽃 형상으로 만든 'Pieno di Vuoto(비움의 채움)' 연작은 비움과 채움의 순환을 표현했다.

대승불교 경전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않음을 뜻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반영했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점점 옅어지는 'Timeless' 연작은 바다의 잔잔한 물결과 그 흐름의 영원성을 담았다.

회오리 형상을 지닌 'The Water' 연작은 역동적인 물줄기를 표현했다.

황금비례를 보여주는 'Nautilus(앵무조개)' 선은 방사형으로 소용돌이친다.


김민정 The Street
'The Street' 연작은 우산으로 가득 찬 거리 풍경을 추상화했다.

작가는 "만약 태국의 높은 건물에서 밖을 내다보면 뭐가 보일까 상상의 풍경을 담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어서 우산을 많이 쓰고 다닐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에서 들은 파도 소리를 그렸는데 전통 산수화처럼 보이는 'Mountain(산)' 연작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영혼이 육체를 이탈해 내려다본 방을 표현한 'The Room(방)' 주제는 명상이다.

9세부터 서예와 명상을 배운 작가는 "성공적 명상 단계를 표현했다.

작업을 안 할 때 호흡을 고르면서 생각을 비우는 명상을 자주 한다"고 했다.

전시는 3월 28일까지.

김민정 작가가 촛불로 한지를 태우는 작업 과정.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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