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사법족쇄, 삼성이라 그나마 버틴 것”...‘묻지마 기소·상고’ 개혁 한 목소리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2025.7.17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종 무죄를 확정받으면서 한국 검찰의 무분별한 기소와 기계적으로 행하는 상고, 총수 개인에 대한 인신 구속에 집착하는 수사 행태 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재계에서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한국의 형사사법 절차 전반이 기업 경영과 시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온 형사사건을 실익이나 새로운 증거 없이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관행에 대한 비판이다.

이른바 ‘묻지마 상고’다.

미국·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사실심에서 무죄가 확정되면 검사의 상소 자체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반면 한국은 무조건 대법원 상고까지 끌고 가는 걸 당연시하는 구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수사 중단’ 권고를 따르지 않고 기소를 강행하기도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소부터 상고까지 무리하다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며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이 이른바 ‘실세’ 라인이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했다.


경영자 개인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곧바로 기업 리스크로 이어진다.

특히 인신 구속이 걸려 있는 중요한 재판이 장기화되면 대규모 투자와 글로벌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재계에선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글로벌 수주전이나 인수·합병(M&A)에서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계 관계자는 “일례로 최소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돈이 오고 가는 M&A는 총수들끼리 교감이 없으면 성사되기 어렵다”며 “하지만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으면 해외 기업 총수와의 만남이 사실상 불가능해 M&A처럼 규모가 큰 결정은 내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형사 제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무리한 수사와 무분별한 기소로 이어지고, 죄형법정주의와 공정성, 비례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는 물론 제재의 효과 측면에서도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나아가 형사 재판의 장기화는 법적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기업의 투자 내지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승영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배심원이 판단한 사실심 결과를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고, 새로운 증거 없이 무죄 판결을 뒤집기 어렵다”며 “검찰이 수사와 기소에만 방점을 찍고 그 뒤 공소 유지를 이유로 재판을 끌고 가는 관행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재계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 방식 역시 도마 위에 오른다.

한국은 기업의 위법행위에 대해 총수 개인의 인신 구속을 우선하는 반면, 해외는 행정제재 중심이다.

글로벌 기업이 관여된 위법행위도 영업정지나 과징금, 민사 합의 등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은 이런 민사 제재가 실효성이 떨어지다 보니 검찰이 형사법으로 기업인을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2025.7.17 [뉴스1]
검찰이 경제 범죄를 수사할 때 꺼내 드는 카드인 ‘배임죄’ 역시 악명이 높다.

한국의 배임죄 조항은 경영자가 내린 판단이 사후에 회사에 손실을 입힌 것으로 판단되면 수사 기관의 판단에 따라 절차의 정당성 등과 관계없이 처벌 가능한 조항이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중견기업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횡령 등 다른 혐의를 찾지 못해 배임죄만으로 불구속 기소를 한 적이 있다”며 “배임죄란 형법 조항만 없었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경영상 정무 판단이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경영인에 대한 가혹한 수사 관행을 풀어낼 해법으로는 먼저 상고 제한 요건의 법제화가 거론된다.

윤 교수는 “사실심이 끝난 사건을 새로운 증거 없이 대법원까지 끌고 가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걸러야 한다”며 “형사 책임보다 민사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법률을 바꾸려는 흐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임죄 폐지 목소리도 높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인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경영 판단으로 주주나 회사가 손실을 입었다면 민사로 해결하고 경영자는 사익을 취했을 경우에만 국한해 다른 혐의로 처벌하면 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형사법 중심의 기업 규율을 넘어 경영상 판단에 대한 존중과 법적 안정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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