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약 1조원 규모의 재고 충당금을 2분기 실적에 반영하며 반도체 사업의 부담을 정리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업계에선 이번 결정으로 단기 실적엔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메모리 부문의 회복세를 가늠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 74조원, 영업이익 4조6000억원을 기록했다고 잠정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09% 감소해 큰 변동은 없었지만, 영업이익은 55.9% 줄어들며 증권가 컨센서스를 1조원 이상 하회하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실적 악화의 핵심 요인은 반도체 부문의 부진이었다.


삼성전자 전체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약 1조원 규모의 재고자산 평가손실 충당금을 설정했다.

이는 향후 판매가 어렵거나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반도체 재고를 미리 손실로 인식해 장부에 반영한 조치다.


특히 기존에 생산된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 일부가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실제 판매에 앞서 평가손실로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HBM뿐만 아니라 D램, 낸드플래시 등도 판매 가능성이 낮은 물량을 중심으로 비용 처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메모리 부문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정부의 대중국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통제로 삼성전자의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은 2분기에도 적자를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선 제품 출하 제한, 설비 가동률 저하, 재고 충당 등 삼중고가 겹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의 또 다른 축인 낸드플래시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스마트폰과 PC 등 주요 고객사의 수요 회복이 지연되면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적자를 지속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들어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줄이고,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전략을 전환했지만, 수요 및 가격 하락의 충격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 DS부문의 2분기 실적은 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영업이익 6조4500억원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한 수치다.


비(非)반도체 사업은 반도체 부문보다는 양호한 성과를 보였지만, 전체적인 실적 악화 흐름을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모바일경험(MX) 부문은 갤럭시 S25의 초기 판매 효과가 약화되며 계절적 비수기에 접어들었다.

TV와 가전 부문은 미국의 관세 부담, 글로벌 소비 위축, 경쟁 심화 등의 영향으로 수익성이 둔화됐다.

하만은 고정 수요 기반의 자동차 오디오 시장에서 비교적 견조한 실적을 보였으나 전사 실적을 지탱하기엔 미흡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잠정 실적 발표에서 사업 부문별 구체적인 실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증권가에선 2분기 각 부문의 영업이익을 DS부문 4000억원, MX·네트워크 3조원, 디스플레이 5000억원, TV·가전 3000억원, 하만 4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재고 부담을 털어내고 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하반기 실적 회복 가능성이 열렸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HBM3E 12단 제품을 AMD, 브로드컴 등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기 시작한 점은 하반기 실적 회복 기대를 높이는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된다.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와 HBM 품질 테스트도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공급망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출하량과 평균판매단가(ASP) 모두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한발 더 나아가 연내 차세대 제품인 HBM4(6세대) 양산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차세대 AI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메모리로, 삼성의 고성능 반도체 전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제품이다.


파운드리 부문은 고객사 확대와 2나노미터(㎚) 공정의 조기 양산을 통해 적자폭 축소를 노리고 있다.

특히 저전력 및 AI 특화 설계를 지원하는 2나노 공정은 연말부터 본격적인 고객사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동시에 상용화된 지 오래된 28나노 이상 공정은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실적 방어에 나설 계획이다.


모바일 사업도 반등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갤럭시 언팩 2025'를 개최하고 Z폴드7, Z플립7 등 하반기 전략 스마트폰을 공개할 예정이다.

특히 Z플립7엔 삼성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2500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엑시노스의 복귀는 시스템LSI 사업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실적 회복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가 2분기에 실적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D램은 수급 균형이 안정화되면서 가격 상승 구간에 진입했다"며 "하반기엔 출하 증가에 따라 메모리 중심으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도 "HBM3E의 비중 확대와 파운드리의 신규 수주가 맞물리며 3분기부터 적자폭이 좁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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