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에 '자살명령' 내린다?" … 美바이오기업, 신개념 유전자 기술 공개

시리악 뢰딩 얼리 CEO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얼리


"암을 쫓는 시대, 치료법을 찾아 헤매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암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
시리악 뢰딩 얼리(Earli) 최고경영자(CEO)는 23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얼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암에게 '이렇게 행동하라'고 명령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얼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시티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 기업이다.

암세포만 표적해 바이오마커를 생성하고, 종양이 작을 때도 영상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뢰딩 CEO는 "대부분의 암은 표적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없고, 있더라도 환자마다 달라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인 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전 세계 항암제 1위인 키트루다도 면역계가 암을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반응하지 않는다.

반응률이 보통 30~40%에 불과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자연 발생 바이오마커를 찾는 대신, 유전자(DNA)를 주입해 암세포가 스스로를 파괴하게 만들자는 발상에서 얼리가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탠퍼드대 영상의학과장이었던 고(故) 샘 갬비어 박사와의 인연을 계기로 암 조기 치료 분야에 뛰어들었다.

뢰딩 CEO는 갬비어 박사가 16세 아들을 암으로 잃었다는 기사를 읽고 직접 그에게 연락했고, 두 사람은 매주 토요일 아침 갬비어의 부엌 식탁에서 생물학과 기술을 함께 논의하며 얼리의 구상을 다듬었다.


얼리는 유전자 치료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 안에서만 작동하는 합성 DNA 구조체를 설계한다.

이 구조체는 지질나노입자(LNP)에 담겨 암세포만 찾아가고, 세포핵 안에 들어가 활성화되면 암세포를 '명령을 수행하는 공장'처럼 바꿔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내게 한다.


초기 DNA 구조체의 정확도는 13%에 그쳤지만, 얼리는 인공지능(AI) 학습과 생쥐 모델 실험을 병행해 이를 98% 수준까지 높였다.


이 방식은 단순 진단을 넘어 치료까지 가능하게 한다.

암세포 안에서만 치료 단백질이 생성되기 때문에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아 부작용 위험이 낮다.

뢰딩 CEO는 "IL-2나 IL-12 같은 면역 자극 단백질은 정맥주사하면 전신에 퍼져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치료제로 사용할 수 없다"며 "이를 암세포 내부에서만 생성되도록 설계해 치료 효과는 유지하면서도 전신 독성은 줄였다"고 설명했다.


또 "쥐 실험에서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의 비율이 면역 억제성 T세포에 비해 20배 증가했고, DNA 치료를 받은 쪽에서는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사람 종양을 이식한 쥐 모델에서도 DNA 구조체를 투여한 지 40일이 지난 뒤까지 T세포가 활성 상태를 유지하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얼리는 현재 폐암, 간암, 방광암을 우선 타깃으로 정하고, 향후 18개월 안에 첫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어떤 암종과 치료제 조합을 먼저 적용할지는 10개월 이내에 결정할 예정이다.

뢰딩 CEO는 "2027년 초 사람 대상 임상 1상을 시작해 2028년 임상 2상, 2029년 임상 3상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며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30년쯤부터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뢰딩 CEO는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도 내비쳤다.

그는 "한국은 조기 암 검진과 치료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며 "국가 주도 검진 프로그램 덕분에 많은 이들이 암을 이른 단계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미세전이로 재발 위험이 있는 만큼 얼리 기술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 병원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환자 모집도 빨라, 임상시험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이라며 "정부가 승인 절차를 더 간소화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은 이런 새로운 기술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실현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라며 "이 기술이 세계에 나오기까지 한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왕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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