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영이 우승 트로피와 함께 '통산 3승'을 뜻하는 손가락 세개를 펼쳐 보이고 있다.

KLPGA


남은 거리는 단 1.6m. 하지만 오른쪽으로 심한 경사에 버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심호흡을 한 이가영은 홀 왼쪽으로 한 컵가량을 보고 신중하게 퍼트했고, 오른쪽으로 휘어지던 볼은 홀 오른쪽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난해 7월에 열린 롯데오픈 이후 11개월 만에 다시 맛본 우승. 통산 3승 고지를 밟은 이가영은 환한 미소로 동료들의 축하 물세례를 만끽했다.


8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성문안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최종일 3라운드. 우승자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공동 선두만 무려 5명으로 시작된 최종일. 긴장한 탓인지 좀처럼 몰아치기가 나오지 못했다.

이가영은 전반에 버디와 보기를 2개씩 적어내며 타수를 줄이는 데 실패했지만 후반에 버디만 2개를 잡아내며 합계 12언더파 204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가영은 "초반에 스코어를 줄이지 못했고, '다른 선수들은 2~3타 줄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 뒤 "하지만 후반 스코어보드를 보니 차이가 별로 안 나서 '나도 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며 상황을 돌아봤다.


사실 이가영이 경기를 끝냈을 때 순위는 공동 2위. 가장 마지막 조에서 경기를 펼친 한진선이 18번홀을 남기고 1타 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홀이기에 기대감은 작았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한진선의 1.5m 파 퍼트가 홀을 외면하며 '루키' 김시현과 한진선, 이가영이 공동 선두가 됐다.


숨막히는 연장 1차전. 한진선이 앞선 18번홀 '3퍼트'의 한을 풀듯 10.5m 거리에서 버디를 성공시켰다.

이가영도 침착하게 1.3m 버디를 넣었지만, 김시현은 아쉽게 파에 그치며 가장 먼저 탈락했다.


이제 1대1 승부. 이가영은 90m 거리에서 정교한 웨지샷으로 다시 핀 1.6m 거리 버디 기회를 잡았지만, 한진선의 세 번째 샷은 10m 이상 크게 날아갔다.

그리고 한진선의 회심의 버디 퍼트가 홀을 외면한 사이, 침착하게 버디를 성공시킨 이가영은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가영은 "출발할 때 다른 선수들과 스코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많이 떨면서 쳤다"며 "내 플레이를 믿고 하자고 생각했더니 우승까지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연장전 전략에 대해서는 "웨지샷 풀스윙 거리가 90m다.

그 거리를 남기려는 데에만 집중했고 두 번의 버디를 잡아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교한 샷으로 성문안CC를 정복한 이가영. 아이언샷을 다시 드로 구질로 바꿔 경기한 게 효과를 봤다.

이가영은 올 시즌을 앞두고 아이언샷 구질을 드로에서 페이드로 바꿨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샷을 하기 위해 방향 설정부터 바꿔야 하는 탓에 혼란이 생겼고 좀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결정을 내렸다.

Sh수협은행 MBN 여자오픈부터 드로 구질로 돌아왔고, 승부수는 적중했다.

Sh수협은행 MBN 여자오픈을 공동 7위로 마친 이가영은 이번 대회에서 다시 정교한 아이언샷을 선보이며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

이가영은 "아이언 구질 변화가 있어서 타깃을 정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드로 구질로 다시 변경하면서 마음이 편해져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2018년 입회해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KLPGA 투어에서 활약한 이가영은 2022년 10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정상에 오른 뒤 약 2년 만인 지난해 7월 롯데오픈에서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11개월 만에 통산 3승 고지에 올라섰다.

점점 우승 주기가 짧아지는 이가영은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1승씩 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상반기에 벌써 1승을 했으니, 1승을 더하기 위해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가영은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우승으로 대상포인트 80점을 받아 10계단이나 오른 6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2억1600만원의 상금을 받아 시즌 상금을 4억1797만9667원으로 늘리며 상금랭킹도 14계단 오른 3위를 기록했다.


단독 선두를 달리다 1.5m 파 퍼트를 놓친 한진선은 통산 3승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이 대회를 2위로 마치며 상금랭킹 18위, 대상포인트 25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대회 첫날 눈물까지 쏟을 정도로 '단일 대회 5연패'에 부담을 드러냈던 박민지는 이날 보기 3개와 버디 2개로 1타를 잃고 합계 3언더파 213타, 공동 40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박민지는 "4연패도 대단한 것이라 이제 다른 선수가 제 기록을 얼른 또 깨줬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주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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