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법 비상 ◆
하도급 업체가 관리하는 공사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원도급 업체가 법에 정해진 안전·보건 의무를 다했다면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도급 업체 대표가 법정의무를 이행한 사실을 근거로 무죄 선고를 받은 첫 사례다.


21일 건설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형사3단독(부장판사 지창구)은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중소 건설사 삼화건설 윤장환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고 당시 안전·보건 책임을 맡았던 삼화건설 현장소장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삼화건설 법인에 대해서만 벌금 400만원이 부과됐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다섯 번째 이뤄진 무죄 판결이다.

앞선 네 건이 공사금액 기준 미달 또는 사고 예견 가능성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면, 이번 사건은 원도급 업체 대표가 법정의무를 이행한 사실을 입증해 책임을 면했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판결에 따르면 2022년 10월 전북 군산시 금광동 하수관로 공사 현장에서 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 A씨가 공구를 챙기기 위해 터파기된 굴착 공간에 진입했다가 지반 붕괴로 매몰돼 숨졌다.

시방서에는 지보공을 제거하기 전 되메움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이를 지키지 않고 지보공을 먼저 철거했다.


검찰은 원도급 업체인 삼화건설이 현장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고 조치하는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고,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도 미흡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삼화건설이 위험성 평가와 안전관리 계획 수립 등 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치를 이행했으며, 사고 당시 실제 작업 지휘권은 하도급 업체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도급이 도급만 했다고 해서 현장 작업의 직접적 지휘 책임까지 지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배상운 대한건설협회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판결은 법적의무를 이행하려고 노력한 기업에 일부 실수가 있어도 처벌이 면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중소 건설사의 과도한 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동계에서는 "위험성 평가 등 서류상의 절차 이행만으로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법의 실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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