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다면평가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
리더가 부하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리더를 부하, 상사, 동료 그리고 본인이 평가하면서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는 360도 다면평가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에서 시작해 1970~1980년대 미국 IBM, AT&T, GE 등이 채택한 후 여러 국가 기업으로 확산했다.
한국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약 30년 전에 도입돼 피평가자들의 초기 반발을 극복하고 정착됐다.
다면평가는 리더의 장단점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해줌으로써 리더 자신에게 각성 기회를 제공하고, 개발 효율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 아래와 같은 한계점들이 노출되면서 이 제도의 방향 전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투자자 관점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투자자들이 투자 결정을 할 때 다면평가 제도가 있다고 해서 회사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재무건전성, 성장성, 고객 충성도, 기술력 등은 주요 투자 결정 요인이지만, 다면평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투자할 때 피투자 기업의 리더들이 누구이고 어떤 역량을 가졌는지를 깊이 분석한다.
울리치 미시간대 교수는 이것을 '리더십자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다면평가 제도 존재 여부는 리더십자본 평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평균에 회귀한다.
다면평가를 오래 하다 보면 피평가자 집단의 분산이 줄어들고 평균에 모이게 된다.
회사 전체로 봤을 때 모든 항목에서 피평가자들의 점수가 비슷해지는 평균회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피평가자와 평가자 양측이 학습한 결과인 것 같다.
평균회귀는 다면평가 제도를 활용해 특출한 리더를 특정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주어진 일은 잘하지만 뛰어난 특징이 없는, '리더십 브랜드'가 불분명한 '
노브랜드(No Brand)' 리더들로 조직이 채워진다.
셋째, 현장 동시성이 떨어진다.
다면평가를 할 때 설문조사, 기술문, 인터뷰, 시뮬레이션 등 여러 추상화 도구를 사용하는데, 이런 도구를 사용해 만들어진 데이터는 현장의 실제와 괴리가 크다.
현장에는 리더가 하는 말과 행동은 물론 각종의 생체신호, 글과 영상 등 실체적 데이터가 쌓여 있는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멀티모달 AI를 활용한 심도 있는 분석과 즉시 피드백을 통해 평가와 행동 수정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이 HR 부서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채우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넷째, 내부 지향적이다.
다면평가는 평가 결과를 자사의 동일 직급 리더들과 비교한다.
같은 직급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경쟁사나 앞선 기업의 리더들과 비교해 어떤 수준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외부 컨설팅 업체에 의뢰하면 타사와 비교를 할 수 있지만, 이들은 표준화된 설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사의 특성을 반영하기 힘들고 정보 유출도 우려된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자료 수집 대행 업체가 많아서 원하는 데이터를 얻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섯째, 인사 평가에 다면평가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다면평가 결과가 승진이나 급여 등 인사보다 리더십 개발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다면평가를 일종의 액세서리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조직원들은 인사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제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국 기업의 다면평가 제도는 기초가 튼튼한 리더들을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는 그간의 '정교한 측정' 기조를 넘어 '전략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전략화는 기업 이사회가 다면평가와 '리더십자본' 진단을 담당하도록 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대 '인재 제일'을 내세우면서 이사회에 HR·리더십 전문가를 두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회사에 어떤 브랜드의 리더들이 어떻게 분포돼 있으며, 그들의 자본 가치와 경쟁력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를 글로벌 공간에서 분석·대응하는 역할을 이사회가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리더십자본 평가와 더불어 투자자, 고객, 국민이 중요시하는 '단순, 강력한(Simple & Strong)' 다면평가 항목의 개발·활용, 최고의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이상적인 리더 분포모형 정립, 리더 서식 조건 혁파, 탁월한 리더 육성 전략 수립과 구현 등의 소임을 이사회가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에 리더십자본이 고갈된 것은 어떻게 다시 채울 것인가?
[백기복 국민대 명예교수·(주)리더십코리아 대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