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 업계는 그야말로 ‘혹한기’라고 평가됩니다. 대기업에서도 희망퇴직이 줄을 잇고, 저금리 호황기가 지나면서 스타트업 투자 시장도 얼어붙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스스로 대기업의 따뜻한 품을 뛰쳐나와 어렵기로 소문난 ‘외주 개발사’를 창업해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습니다.
SK텔레콤에서 9년을 근무하며 탄탄한 커리어를 쌓았으면서도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제로백데브 박진희 대표입니다.
다음은 박진희 대표와의 일문일답.
-SK텔레콤은 높은 연봉에 괜찮은 복지로 다들 선호하는 기업인데, 퇴사를 결심하고 ‘외주 개발사’를 창업한 배경이 우선 궁금하다.
보통 IT 대기업 출신이라면 인하우스 프로덕트(자체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외주 개발사를 창업했다. 이런 선택을 한 사람은 아마 전에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SK텔레콤에서 약 9년 동안 B2B 세일즈와 AI 사업개발을 담당하면서, 수많은 외주 개발사와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외주개발사를 선정해서 내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SK텔레콤의 솔루션을 도입한 고객사들이 지정한 외주 개발사들과 협력하며 IT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한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매번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첫 번째는, ‘짜릿함’이었다. 내가 속한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다양한 분야에 속한 기업들의 문제를 IT로 해결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자체 서비스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아쉬움’이었다.
많은 외주 개발사들이 제품 개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IT 개발이란 단순한 ‘서비스 개발’이 아니라, 이 프로덕트가 실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인지,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인지까지도 고민해야 하는 과정이다. 고객사가 단순히 원하는 기능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이 기능이 정말 비즈니스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수익을 내고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주는 개발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사가 그러한 고민 없이, 단순한 개발 대행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한 현실에 착안하여 ‘비즈니스의 본질을 함께 고민하는 IT 개발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제로백데브를 창업하게 되었다.
-‘비즈니스의 본질을 함께 고민하는 개발사’라는 표현이 조금은 생소하게 들린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외주를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내부 사정 아닌가?
맞는 얘기다. 일반적인 외주 개발사는 ‘어떤 기능을 만들어줄까요?’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한다. 하지만, 고객사 입장에서 IT 서비스를 만든다는 건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사업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엔진을 장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엔진은 슈퍼카의 엔진처럼 제로백(자동차가 0km에서 100km 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뛰어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쟁사보다 더 빠르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제로백’ 성능이 뛰어난 엔진을 개발(dev) 해준다는 의미로 회사 이름을 ‘제로백데브’(0100dev)로 지었다.
사실, 서비스의 기능 하나 하나가 실제 비즈니스와 어떻게 연결될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서비스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저희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 프로덕트가 어떻게 수익을 내고,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파고든다.
-개발사가 사업적 고민까지 같이 해주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회사 생활을 할 때부터 그런 성향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SK텔레콤에서 B2B세일즈와 사업개발 직무 커리어를 쌓았다. 주로 B2B 기업들을 대상으로 IT 솔루션을 제안하고 협력하는 일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IT 서비스가 고객사의 비즈니스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PO(Product Owner) 역할을 맡아 직접 IT 제품을 기획하고 시장에 출시하는 경험을 하면서 ‘이제는 정말 이 일을 내 본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IT 서비스의 기획과 개발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먼저 고민하는 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던 것 같다.
-거듭 강조하는 ‘기존 개발사와 차별화' 부분이
창업 이후 시장에서 실제로 인정받고 있는지가 궁금한데?
회사 일을 할 때부터 다른 기업들의 사업을 함께 고민하는 일이 정말 흥미롭고 보람 있었다. 그래서 창업 이후에도 단순히 개발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IT와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적 아이디어를 고객사에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제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발 이후’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SK텔레콤이라는 좋은 회사에서 배운 사업 개발의 방법론과 노하우를 외주 개발 프로젝트에 200% 쏟아내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 덕분에 최근에는 더 밀접한 형태로 협업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고 있다. 단순한 외주 계약이 아니라, 제로백데브가 고객사(법인)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IT 비즈니스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기존 외주 개발 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협업 모델이지만, 저희가 진심으로 고객사의 사업을 고민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이런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외주 개발 용역을 넘어 ‘진짜 파트너십’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외주 개발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외주 개발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하면, 어떤 부분을 얘기하는 건가?
IT 외주 개발에 대한 검색만 해봐도 ‘외주 개발 실패하지 않는 법’ ‘외주 개발사에 속지 않는 법’ 같은 글들이 넘쳐 난다. 그만큼 많은 기업들이 외주 개발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거나,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뜻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 많은 외주 개발사들이 기능 개발에만 집중하고, 정작 고객사가 그러한 개발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IT 개발을 외주로 맡긴다는 건 단순히 코드를 작성해주는 아웃소싱이 아니다. 결국 고객사가 원하는 것은 ‘개발’이 아니라, ‘이 개발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해주는 파트너인 것이다. 그래서 저희 제로백데브는 개발을 넘어, 비즈니스 관점에서 IT 서비스를 설계하고 고객사와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십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희는 기존 외주 개발사와 확실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새로운 시도를 함께할 팀원들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이 모였나?
그 말씀은 퇴사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저는 고객사에 개발팀을 소개할 때 “제가 살아오면서 만난 개발자 중 정말‘미친 실력’을 가진 분들”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B2B 세일즈부터 PO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정말 많은 개발자들과 협업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사람은 정말 미쳤다”"이 사람이랑 일하면 무슨 사업을 해도 먹고 살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개발자들을 한 명씩 설득해 팀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기획과 디자인에서 실력과 경험을 갖춘 분도 충원했다. 앞으로도 팀을 계속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 팀원들 중에 같은 SK텔레콤 출신도 있는가?
아직은 없다. 함께 일하고 싶은 분들이 몇 분 계시지만, 최고의 대기업을 나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회사를 빠르게 더 성장시켜 언젠가는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내로라하는 실력 있는 개발자들이 모였다면, 제로백데브만의 자체 서비스를 만들 계획은 없는가?
당연히 내부적으로도 많은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IT 외주 개발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기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IT 외주 개발 시장은 개발사들이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제로백데브는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비즈니스 목표까지 고려한 IT 개발을 하고 있다. 저희 같은 개발사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에서도 더 좋은 IT 비즈니스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외주 개발 시장에서 혁신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로백데브만의 자체 서비스도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은?
현재 IT 개발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비즈니스 이해력’이 특히 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로백데브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기업들이 IT 개발을 통해 실제 비즈니스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특화된 개발사로 자리 잡는 것이다.
둘째는, 단순한 외주 개발사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IT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근래 많이 제안을 받고 있는 ‘지분 취득’ 모델을 통해 고객사와 개발사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기존 외주 개발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는 데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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