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내내 비현실적인 현실에 일상이 잠식당해 밥을 먹고 잠을 자도 어딘가 불편하고 붕 뜬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다.

일상이 깨진 것이다.

해가 바뀌어도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지난해와 등을 맞댄 새해 아침의 시무식엔 무거운 공기만 감돈다.

머릿속에서는 찌릿한 감각적 착란이 일어난다.

만약 국회가 해산되고 계엄이 지속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드러나는 사실들이 우리에게 닥쳤을지도 모를 현실을 상상하게끔 해준다.

충분히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고 혼잣말을 하면, 공포도 공포지만 너무 어이가 없고 허탈감을 불러온다.

권력의 무서움, 시스템의 허약함이 뇌리를 강타한다.

계속 뉴스를 보면서 자주 일손을 놓는다.

해야 할 일은 방치되어 쌓여간다.

시간이 지나도 사태는 오리무중이고 일상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내란의 이름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일상이 회복되려면 정명(正名)과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되어야 한다.

정명은 공자의 사상이다.

공자는 정치를 하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말했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君君臣臣父父子子)"이라고 답했다.

겉으로는 바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르지 않은 것이 많다.

겉으로는 효처럼 보여도 실상은 효가 아닌 것이다.

많은 권력자가 불의(不義)를 저지르고도 정의(定義)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공자는 파악했다.

불의한 일에 대해 '정의'라고 주장한다면 자신은 그것을 '불의'라고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불의한 사태에 대해서는 '불의'라는 이름을, 정의로운 사태에 대해서는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겠다는 것이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정명 사상의 의미다.


사필귀정은 모든 것이 잘못된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나쁜 사람이 잘살고 착한 사람은 못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나쁜 사람은 하늘의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하늘의 상을 받는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사필귀정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정명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정명의 도미노가 펼쳐져야 한다.


이번 사태 이후로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 등장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도 자주 운위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다.

진시황을 보좌하던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있었다.

진시황이 죽자 어린 호해를 내세워 황제로 옹립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황제의 형제자매도 예외가 될 수 없었고,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는 자들도 모조리 도륙했다.

어리석은 호해에게는 가스라이팅을 하며 권력을 농단했다.

어느 날 조고는 자신의 세뇌가 잘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호해에게 조공으로 받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

그러자 어리둥절해진 호해는 "이게 사슴이지 어찌 말이라 하는가" 되묻다가 주변에도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변에선 입을 다무는 이도 있었고 조고에게 아부하느라 "그것은 말입니다"고 대답하는 이도 있었으며, 사슴이라 하는 이도 있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답한 이들을 나중에 남몰래 처단했다.

이후 모든 이가 조고를 두려워했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고, 논리도 없으며, 당장의 주장만 펼칠 수 있으면 나머지는 상관없다는 듯이 내뱉는 말들이 횡행한다.

'거짓말'의 문제를 넘어 '말이 아닌 말의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처음 우리 사회에 지록위마의 조짐이 있었을 때는 말이 국산이냐 아니냐 논란하는 정도였다.

정치의 언어는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그러자 이제는 암말을 수말이라고 우기는 정도로 그 오염도가 심화되었다.

다시 흑마를 백마로 우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제야 무슨 말인가 싶어 정신을 차렸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결국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주장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올해는 정명의 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낱말의 사전적 의미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사전을 바꾸고 헌법을 바꿀 게 아니라, 사전과 헌법이 가장 위에서 모든 것을 규정해 나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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