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를 둘러싸고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양측의 갈등이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사모펀드들이 국내에서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사모펀드 시장(약정액 기준) 규모는 136조 4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지난 2004년 제도 도입 이후 20년 만에 340배 이상 성장한 규모입니다.

일각에서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에 대한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신금산분리' 제재 목소리가 나옵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전국 만 18세 남녀 1천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52.1%)가 '그렇지 않다(23.2%)'는 응답의 2배를 훨씬 넘었습니다.

또 사모펀드의 인수·합병(M&A)에 대한 대응방안을 묻는 질문에 45%가 '규제 강화'를 선택했고, 33.6%는 '경영권 방어 수단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돈과 자본의 논리로 기업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사모펀드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으며, 기업 차원의 경영권 방어 수단도 일정 부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국내 주요 사모펀드들과 간담회를 열고 사모펀드의 책임성 강화와 자본시장의 주체로서 건전한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지금까지 적용하지 않았던 사모펀드에 대한 검사권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검사권 등의 경우 이슈가 되는 사안 등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금융자본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는 기업이 직접 사모펀드의 불법적인 행태 등을 진정 또는 고발할 경우, 인수 시도 등을 일정 기간 멈추도록 하거나 신속한 검사와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검사 등이 제도화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경영권 방어 수단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코스피 상장사 806개사 중 정관에 규정된 일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이사 자격 제한, 시차 임기제 등이 있습니다.

초다수결의제란 일부 안건에 대해 주주총회 통과 요건을 강화한 제도로 국내 상장사 중 52개사(6.5%)가 도입하고 있습니다.

기존 기업 경영진이 M&A 과정이나 이후에 해임되거나 퇴직할 때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황금낙하산은 40개사(5.0%), 이사 숫자 제한은 26개사(3.2%), 이사회 구성원들의 임기를 서로 다르게 하는 시차 임기제는 20개사(2.5%) 등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러한 수단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초다수결의제는 주주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등 현행 상법상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며 "황금낙하산 제도도 대주주나 기존 경영진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한 것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 동안 재계에서는 기업사냥꾼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차등 의결권'과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차등 의결권은 주식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숫자를 달리 부여하는 것을 뜻합니다.

차등 의결권을 도입하면 기업의 중장기 성장과 함께 하는 주주와 기업 경영진이 보유한 주식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평균 5년이 지나면 투자금 회수를 위해 기업을 매각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가 있지만, 현행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차등 의결권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또한 포이즌필은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권리를 부여해 기업사냥꾼의 지분을 희석시키거나, 인수 비용을 크게 증가시켜 적대적 M&A를 중단하도록 만드는 경영권 방어 행위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차등 의결권, 포이즌필 등 주요 경영권 방어 수단을 모두 불허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경영권이 확보돼야만 기업도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이나연 기자 / nayeon@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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