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이 주주환원?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이다”…10년간 100조 사들인 인텔의 몰락 [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자사주 매입해 주가부양 매몰
시장 눈치만 보며 끌려다니다
투자 실기하고 인재 빠져나가
대만 TSMC와 운명 엇갈려

반도체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인텔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대규모 적자를 발표하고 주가가 폭락했다.

각종 대책을 내놓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장 보고서나 언론은 그동안 벌어진 각종 전략적 실패에 초점을 맞춘다.

애플의 모바일칩 제조 요청을 거절한 것에서부터, 본업인 CPU에서 AMD에게 추격을 허용하고, 파운드리에서 우왕좌왕하고,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에 주도권을 내준 것까지 수많은 실수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실수 자체보다 그렇게 오래동안 실수를 계속한 배경에 관심이 더 많다.


위기의 인텔. [로이터 연합뉴스]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2010년 경으로 돌아가보자. 2000년에 30달러가량이던 인텔의 주가(주식분할 반영가격)는 계속 떨어져 2009년 2월에 13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다.

매출액 대비 15%가량의 준수한 수익을 올리고는 있었지만, 주력이던 CPU시장의 성장이 예전만 못하고 신사업도 눈에 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오텔리니도 대책을 세웠지만 큰 변화가 없었고 2013년 크르자니치가 새 CEO가 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방향은 자사주매입 확대, 직원감축 등 축소지향적 주가 부양이었다.


2011년 이후 10년동안 인텔의 자사주매입은 800억 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

크르자니치 취임 직후인 2014년에는 자사주매입액이 당기 순익의 92%로까지 치솟았다.

전체 인력의 11%를 줄이기도 했다.

자사주매입과 비용절감이 운 좋게 데이터센터 건설 붐과 겹쳐 CPU판매가 늘어나 주가는 올라갔다.

하지만 인텔을 나간 기술자들이 AMD로 옮겨 가면서 경쟁사를 키우는 부메랑이 됐고 신사업에서의 패착은 거듭됐다.


인텔의 실패는 TSMC와 비교할 때 더 명확히 드러난다.

TSMC도 인텔과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축소경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9년에 모리스 창 회장이 복귀하면서 과감한 투자와 확장경영으로 방향을 180도 바꿨다.

회의적인 시장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공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자사주는 2011년에 직원 스톡옵션 지급을 위해 매입한 240만달러가 유일하다.

10년 동안 인텔이 순익의 47%가량을 자사주매입에 쓴데 비해 TSMC는 0% 수준이다.


흔히 자사주매입을 ‘주주환원’이라고 하지만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이다.

지금 인텔의 주가는 2011년 수준인 20달러가량으로 복귀했다.

10년 동안 자사주매입한 800억달러는 허공으로 날아갔고 주주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자사주 매입하는 동안 주식 팔고 나간 투기꾼들만 이익을 봤다.

반면 TSMC 주가는 2010년 대비 3배가량 뛰었다.

주주들은 주가차익에서만 200%를 벌었다.


자사주매입의 가장 큰 폐해는 최고경영진이 비전을 갖고 시장을 끌고 가기보다 시장 눈치를 보며 끌려가고 심지어 주가조작까지 하게 만드는 한편 본업인 투자와 조직 관리를 소홀하게 하는 가능성에 있다.

인텔이 800억달러를 파운드리에 일찍 쏟아부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상상해보자. 인텔의 1등 지위에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텔은 2012년 파운드리에 진입했다가 2018년 철수했고, 2021년에 다시 들어왔다가 지금 또다시 철수하느냐, 지속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자사주매입은 회사 보유 현금을 자사주로 바꾸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것 자체로는 주가가 오를 이유가 없다.

기업이 노력해서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주가는 오른다.

현찰을 주식과 바꾸고 소각한 뒤 남아 있는 현찰로 가치창출을 고민하기보다, 갖고 있는 전체 현찰로 가치창출 방안을 직접 고민하는 것이 백배 나은 일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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