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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에코의 머리속에 있었다.
기사입력 2021-06-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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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허연의 아포리즘-94]
# 그리고 책이 남았다 1
몇 해 전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났을 때 거대하고 유기적인 도서관 하나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몰려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도서관은 에코의 머릿속에 있었다.

동서고금을 넘어선 방대한 콘텐츠가 장착되어 있는 곳. 그 콘텐츠들이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는 곳.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거대한 지적 회로가 거미줄처럼 가득 차 있는 곳. 그곳이 곧 에코의 두뇌였고 이상적인 도서관이었다.


이탈리아 태생의 에코는 밀라노 자택에만 5만권의 장서를 가지고 있었던 독서광이자 책 수집가였다.

그는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지만 마음 놓고 사서 읽을 수 없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책에 빠진 소년은 법률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철학과 문학을 공부해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스토리텔러가 됐다.


그는 책이 인간의 삶을 연장시키는 유일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한 인간이 소멸한다 해도 그 사람이 지녔던 경험과 지식, 통찰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까지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결과물이 집적된 완전체이자 소통의 광장이라는 게 에코의 생각이었다.


영화 `장미의 이름`
에코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은 도서관 장서를 둘러싼 음모를 다룬 소설이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도 유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것을 봉인하려는 자와 세상에 꺼내 놓으려는 자가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현명하고 지적인 노수사 윌리엄과 그를 따라다니는 시종 아드소가 주인공이다.


소설의 화자는 아드소다.

그는 처음 수도원 장서관에 들어갔을 때 이런 말을 한다.


"그제서야 나는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친 음울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곳. 이 양피지와 저 양피지가 해독할 길 없는 대화를 나누는 곳. 만든 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남는 수많은 비밀의 보고.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막강한 권력자였다.

"
많은 책이 꽂혀 있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아드소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흥이 느껴진다.

책들은 나와 상관없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는 거대한 석관에 들어가 결코 정복되지 않는 하나의 정신이 된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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