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법안 철회를 호소했던 재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경제단체·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이 대내외 리스크에 직면한 한국 경제를 더욱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헌법 제53조에 따라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을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늦어도 다음주에는 최 권한대행의 판단이 나와야 한다.


현재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내용은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세 가지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면 주주들이 이사들에게 손해배상·배임죄 형사고발 등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것이 기업들의 가장 큰 우려다.

한 기업 관계자는 "소송이 남발되면 매년 수백억 원을 소송 방어에 써야 할 형편"이라며 "꾸준히 호소했는데 기업 의견이 묵살돼 답답하다"고 말했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공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9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을 공격한 것이 대표 사례다.

당시 엘리엇은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고배당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다.

현대차그룹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리하며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그룹이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안은 무산됐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라며 "소액주주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경영권까지 위협한다는 면에서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거부권 행사의 키를 쥔 최 권한대행은 그간 상법 개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11월 말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넣으면 충실의무가 충돌한다든지 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고, 법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도 일제히 논평과 성명서를 내며 정부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이번 개정안 통과에 대해 "이번 법안은 우리 산업과 자본시장의 특성 및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편승의 결과물"이라며 "기업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법안이 통과된 것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은 "통상 환경이 급변해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 통과는 수출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경영 리스크를 감수하고 과감한 혁신과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안정적인 경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픽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