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용의 홍키자 빅테크] 국방·금융·질병까지 … 지구상 모든 정보 샅샅이 훑는다

◆ 매경 포커스 ◆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훌쩍 지난 2025년 6월 종전 협상 얘기가 나오지만 전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드론 100여 대로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41대를 폭격해 화제가 됐습니다.

'우크라이나판 트로이목마' 작전이란 평가를 받은 이유는 개전 당시 모두가 러시아의 압도적인 우위를 예상했기 때문일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3년 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죠.
우크라이나의 선방에는 '수상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당시 전쟁 99일 만에 앨릭스 카프를 만났거든요.
카프는 팰런티어 테크놀로지스의 최고경영자(CEO)입니다.

젤렌스키가 그를 만난 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가 바뀝니다.


팰런티어의 기술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의 눈'처럼,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데이터 흐름을 꿰뚫습니다.

이들 정보는 단순히 취합되는 수준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해냅니다.


서학개미들의 해외주식 보관액 가운데 애플을 훌쩍 뛰어넘은 회사, 상장 이후 주가가 1340% 상승한 기업 팰런티어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솔루션 '고담'
우크라이나가 획득했던 비밀 병기는 바로 팰런티어의 빅데이터·인공지능(AI) 솔루션 '고담(Gotham)'입니다.

미국 DC코믹스의 배트맨에 나오는 범죄가 판치는 도시 '고담'시에서 이름을 따온 솔루션입니다.

팰런티어가 전 세계 주요 정부에 제공하는 플랫폼이죠.
고담 프로그램은 차량이나 항공기 선박 등에 배치한 센서를 통해 얻은 각종 신호 정보 등 데이터들을 식별하고 정제해 일종의 패턴을 파악합니다.

상용 위성과 열 감지기, 정찰 드론, SNS 등 확보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자사 AI 모델을 통해 이들 데이터를 실시간 학습하면서 각종 정보를 시각화해냅니다.

전쟁에 적용하면 적군의 현재 위치와 잠복 위치, 정밀 타격이 필요한 장소 정보 등을 지도로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러시아군의 전차, 포병, 보병 부대 등 위치가 지도에 고스란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고요. 표시된 위치에 공격 드론을 보내기만 하면 적을 궤멸할 수 있죠.
2001년 미국 뉴욕 테러의 주범으로 꼽힌 오사마 빈라덴을 발견해 사살한 것도 팰런티어의 빅데이터 분석 덕분으로 전해집니다.

군인과 스파이, 경찰 등이 수집한 정보를 모두 모아 분석한 뒤 테러리스트들의 네트워크를 파악해 은신처를 발견했다는 겁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질병 확산 경로 등 알짜 데이터를 팰런티어의 플랫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시각화 정보를 위해 팰런티어가 획득한 지리 정보 특허만 수백 건이 넘습니다.


팰런티어의 플랫폼 '고담'이 정부용이라면, '파운드리'는 기업용 플랫폼입니다.


파운드리는 기업 활동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통합해내는 역할을 하죠. 가령 재무나 인사, 물류, 재고 등 여러 부서의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통합 분석해내면서 사내 재정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하거나 내부 비리를 감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HD현대가 인수한 HD현대인프라코어는 2019년부터 팰런티어와 손잡았습니다.

팰런티어의 플랫폼을 통해 해외 건설장비에 부착된 센서로 장비 가동 시간을 측정·분석해 납품 지연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팰런티어 플랫폼은 서류, 숫자 등 구조화된 데이터뿐만 아니라 이미지, 영상, SNS 등 비정형 데이터 분석에도 능합니다.

특히 사용자 맞춤형 데이터 정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장점입니다.

'온톨로지'라는 개념이 근저에 깔려 있는데요. 수많은 데이터는 데이터 자체로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맥락이 있습니다.

단순 데이터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특정한 집단 속에서 하나의 데이터가 뜻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팰런티어는 해당 데이터의 속성과 다른 데이터와의 관계 등 계층을 미리 정의한 뒤 데이터 분석에 들어갑니다.


사용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그에 맞춰 데이터를 선별해 의미를 부여하고 범주화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팰런티어는 고객사에 일정 기간 파견개발자를 직접 파견해 맞춤형 온톨로지를 구축한 뒤 소프트웨어를 구동해 데이터를 학습시킵니다.


이 같은 팰런티어 플랫폼의 데이터 정제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도 분주합니다.


HD현대는 2022년에 이미 팰런티어의 파운드리 플랫폼을 조선해양 부문 전 계열사에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HD현대는 2030년까지 스마트조선소로 전환하기 위해 미래 첨단 조선소(FOS)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에 기반해 생산 공정뿐 아니라 최고경영진 의사결정에서부터 영업, 엔지니어링, 연구개발 등 전 영역에 걸쳐 데이터 중심 업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방산기업 LIG넥스원은 지난해 팰런티어와 '미래 무기체계 빅데이터 플랫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LIG넥스원은 정찰용 무인수상정, 초소형 영상레이다(SAR) 위성, 기뢰 제거, 전자기스펙트럼작전(EMSO) 개발 과정에 팰런티어의 데이터 관리 플랫폼을 적용하게 됩니다.


KT는 올해 3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팰런티어의 글로벌 비즈니스·기술 전문가 파트너 네트워크인 '월드와이드 파트너 에코시스템'에 공식 합류했습니다.

팰런티어의 핵심 AI·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KT의 클라우드·네트워크 인프라와 결합해 한국 시장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죠. KT는 회사의 내부 업무 프로세스에 팰런티어 솔루션을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요. KT의 대규모 통신 데이터를 활용해 AI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검증하는 겁니다.

여기서 도출된 성과를 바탕으로 고객사에 최적화된 AI 전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 팰런티어의 시작
팰런티어는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이 현재 CEO인 카프 등과 함께 2003년 창립한 빅테이터 전문 분석 조사업체입니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AI를 쓰기 때문에 AI 소프트웨어 업체로 분류됩니다.


2002년 틸은 페이팔을 이베이에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에 매각했고, 그때 번 돈으로 창업한 회사가 팰런티어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페이팔을 매각해 번 돈으로 스페이스X를 창업한 것과 비슷하죠. 이들이 괜히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게 아닙니다.

틸은 2001년 9·11 테러를 경험한 뒤 어떻게 테러를 예측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데이터로 테러를 예측해보겠다는 계획이 창업의 동기가 됐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만든 벤처캐피털인 인큐텔(IQT)이 팰런티어에 자금을 댔죠. CIA를 비롯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가안보국(NSA), 국방부, 영국 비밀정보국(SIS) 등이 주요 정부 고객이고요. JP모건을 비롯해 크라이슬러, 에어버스 등이 팰런티어의 민간 고객사입니다.

틸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처럼 독보적인 기술로 독점적인 시장을 만드는 회사가 되기 위해 회사 인력 4000명의 대부분이 개발자 등 연구개발 인력입니다.

전체 임직원 중 세일즈 인력은 3~4%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팰런티어의 실적은 어떨까요? 팰런티어가 지난 5월 발표한 1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한 8억8400만달러(약 1조23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순이익도 지난해 1분기 1억550만달러에서 올해 1분기 2억1400만달러로 급증했죠.
특히 1분기 전체 매출 가운데 55%를 차지하는 정부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5% 성장한 4억8700만달러였습니다.

민간 부문 성장률인 33%를 크게 웃돌았죠. 정부 부문 매출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나왔고요.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71%에 달하는데, 군사작전 계획에 사용되는 AI 소프트웨어를 정부에 공급하는 계약들이 주요 매출입니다.

이미 지난해 카프 CEO는 "줄지 않는 끊임없는 AI 수요에 의해 분기 성장이 주도됐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요. 월가에서는 늘 AI가 실제로 회사에 도움을 주느냐를 AI의 버블을 감지하는 지표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팰런티어는 AI가 돈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가는요? 13일(현지시간) 기준으로 137달러를 터치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장 이후 1340% 올랐고, 지난해에만 340% 상승했습니다.

올해도 81% 상승에 육박합니다.

다만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팰런티어에 대한 의견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22명의 애널리스트 중 4명이 매수, 16명이 보유, 5명이 매도를 추천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중립적인 투자 의견을 보이고 있고요. 평균 목표주가는 100달러 수준이지만 최고 목표주가는 160달러, 최저 목표주가는 40달러로 극단적인 편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팰런티어의 현재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250배 수준으로 테슬라가 166배, 엔비디아가 33배 등임을 고려해볼 때 눈에 띄게 높긴 합니다.

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차별화된 기술 역량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지만,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모건스탠리는 팰런티어의 가파른 주가 상승세가 이어져온 만큼 현재 주가는 실적 대비 고평가된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팰런티어 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뒤 조정 구간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자들이 더 나은 매수 시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목표주가를 98달러로 제시했는데, 이는 현재보다 26% 낮은 주가입니다.


팰런티어는 미국에서 그간 '가장 비싸고 은밀한 빅데이터 기업'이라고 표현해왔습니다.

꾸준한 퍼포먼스로 AI 관련 매출을 증명하며 시가총액 3110억달러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은밀함을 완벽히 벗어던지고 월가 낙관론자의 기대대로 시총 1조달러 회사로 성장해갈 수 있을까요?

홍성용 기자는 '네이버 vs 카카오' '메타버스3.0' 등을 집필하며 국내외 대표 플랫폼 기업을 꾸준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의 숨은 뒷얘기를 파헤친 '홍키자 빅테크' 시리즈도 격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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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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