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향란 '즉흥 드로잉'(2025). 김종영미술관

전시장이 온통 선(線)으로 가득 찼다.

어떤 구리선들은 벽면에 바짝 붙어 구불구불 서로 얽히고설킨 채 인체 형상을 이루고, 철사를 색색의 캔버스 천으로 감싸 만든 선들은 3차원 공간을 유영하듯 자유롭게 뻗어 있었다.

평면 드로잉을 이루는 선의 한계를 보란 듯 벗어던진 것이다.


선을 소재로 작업하는 김범중·이길래·안재홍·윤향란 등 작가 4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전 '선과 획 사이'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오는 6월 8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작을 포함한 네 작가의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선은 그림의 시작"이라며 "선으로 이뤄진 네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가 우리 미술의 발원을 되짚어보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장은 각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4개의 방으로 꾸며졌다.

안재홍 작가와 윤향란 작가는 입체 작업을 펼쳤다.

안 작가는 구리선을 구부리고 엮어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인체 조각을 만든다.

그는 "나무와 존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나와 같구나' 하며 감정이 이입돼 각인된 순간이 있었다.

붙박이 생의 나무가 비바람에 요동치는 모습은 존재에 대한 몸짓으로 다가왔고, 나무처럼 목놓아 온몸으로 아우성치고 싶었다"고 밝혔다.


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즉흥 드로잉'(2025) 연작을 선보인다.

3차원 공간에 자유롭게 선을 펼치는 공간 드로잉 작품이다.

윤 작가는 "원래는 평면 회화 작업을 했는데, 드로잉을 더 잘해보고 싶어서 3차원 공간에 철사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기엔 특정 대상을 표현했는데 어느 순간 거기에 작업이 갇힌다는 생각이 들어 몸이 가는 대로 선을 뻗어나가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길래 작가와 김범중 작가는 평면을 미세한 선으로 채우는 수행 끝에 만물의 이치를 담은 기하학 무늬를 얻었다.

이 작가의 'Drawing' 연작은 한 가지 색으로 물들인 한지 위에 얇은 쇠못과 나무로 만든 미세 펜으로 먹물을 찍어 무수히 많은 스트로크(짧은 선)를 그어 완성한다.

장지에 오로지 연필로 작업을 하는 김 작가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선 긋기로 정교한 화면을 완성한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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