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아노라’ ‘듄2’ 등
美 아카데미상 후보작 3편
韓 온라인 업체서 불법 유통
한편당 결제액 ‘200~300원’
A업체, 본지 취재 시작되자
해당작 뒤늦게 ‘금칙어’ 조치
정확한 피해규모 알수 없어
문체부 긴급대응 조치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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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5일 국내 개봉 예정인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8개 부문 후보작 ‘콘클라베’. 디스테이션 |
‘대박 자료! 드디어 받아보게 됩니다.
’ ‘덕분에 잘 보겠습니다.
굿!’
웹하드 기반 영상물 유통업체인 A사의 한 게시판에 24일 오전까지 달렸던 댓글들이다.
총 60개 댓글은 “자료를 공유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업로더(최초 게시자)를 향한 감사인사 일색이었다.
이 댓글을 작성한 사람들은 영화 ‘콘클라베’의 다운로드 이용자들인데,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받기 위해 이들이 지출한 비용은 단돈 ‘210원’이었다.
문제는 ‘콘클라베’가 아직 극장에서 개봉조차 하지 않은 미개봉 최신작이란 점이다.
다음달 3일(한국시간) 발표되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로, 주요 부문 유력 수상 후보이기도 하다.
오스카 수상 유력 후보작들 여러 편이 한국 웹하드 기반 영상물 판매 사이트에서 이미 불법 유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정식 개봉도 하지 않았거나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작품이 200~300원에 온라인 음지에서 버젓이 거래중인 것이다.
영상복제물 불법 유통은 형사 처벌이 가능한 중범죄다.
문화체육광부 저작권범죄과학수사대는 영상물 저작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보고 해당 영상물에 대한 긴급대응 및 중점보호 저작물 지정 조치에 착수했다.
24일 영화업계에서 확인한 사실과 문체부 관계자의 조사결과 등을 종합하면 현재 불법복제물이 유통중인 2025년 오스카 후보작은 총 3편으로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콘클라베’,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2’였다.
세 작품은 모두 다음주 월요일 오스카 시상식에서 수상이 유력한 후보작들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후 바티칸에 모인 추기경들이 교황에 선출되기 위해 벌이는 정치적 암투를, ‘아노라’는 성(性) 노동자인 스트리퍼 아노라가 러시아 재벌을 만나 충동적으로 결혼했다가 무효화에 직면하는 줄거리를, ‘듄: 파트2’는 우주 행성에서 한 소년이 사막의 유목민의 구원자로 부상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들로 모두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콘클라베’의 정식 개봉일은 3월 5일, ‘아노라’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데 불법복제물이 푼돈으로 거래됐다.
‘듄: 파트2’는 작년 2월 극장에 걸려 개봉일은 1년은 지났지만 현재 이 영화의 온라인 정상 구매가는 7000원 수준이지만 300원 남짓만 내면 ‘도둑 관람’이 가능했다.
세 편의 영화가 거짓 자료가 아님을 확인하고자 기자가 해당 영화를 실제로 다운로드 받아 살펴보니, 전부 정상 재생되는 고화질이었고 각 편마다 친절하게 한글 자막까지 첨부된 상태였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과거 개봉작도 아닌 개봉도 전에 영상물이 불법 유통되는 건 수많은 영화인들의 땀과 노력을 짓밟는 정도가 아닌,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라고 질타했다.
할리우드 최신작이나 국내 유명 작품의 불법 유통이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엔 천만 관객 영화 ‘파묘’도 불법복제물이 돌아다녀 제작사와 배급사의 막대한 피해로 이어졌고,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자 올해 오스카 작품상 후보인 ‘서브스턴스’도 불법 유통 피해를 봤다.
해외에서 먼저 개봉한 작품들이 한국에서 개봉하기 전 한글 자막까지 불법 업로드되는 방식이 보편화돼 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정지우 저작권법 전문 변호사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 전송권과 복제권 침해에 모두 해당되고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배상뿐 아니라 형사처벌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작 영화 불법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영상물을 다운로드받은 이용자의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불법복제물 이용은 감소 추세이지만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2월 초 발표한 ‘2024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을 보면 작년 불법 유통된 영화 이용률은 22.6%였다.
‘5명 중 1명’은 아직도 불법 유통된 영화를 본다는 의미다.
본지 취재와 문체부 조사가 개시되자 A업체는 해당 영화 3편의 제목을 ‘금칙어’로 정하고 해당 영상물을 게시판에서 전량 삭제했다.
그러나 불법 유통된 영화들이 얼마나 다운로드됐는지에 관련해서는 피해 규모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다.
A업체는 웹하드 기반의 영상물 콘텐츠 유통회사인데, A업체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받은 영화가 P2P(개인 간 다운로드 방식)로 추가 확산됐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본지는 A업체 본사에도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영화 ‘콘클라베’의 한국 배급사인
엔케이컨텐츠의 남기호 대표는 “외주 업체를 써서 불법 유통을 모니터링하고 조치를 하고 있지만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된다”며 “불법 유통자들을 고소해도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을 내리는 등 처벌이 강화돼야 불법 업로드가 감소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영상물 불법 유통은 한국 영화산업의 신뢰도 훼손으로도 직결된다.
남 대표는 “불법 유통이 워낙 많아 외국에선 한국에 작품을 보내면 콘텐츠가 유출된다는 부정적 인식이 생길 정도다.
한국은 불법 유통이 아직도 활성화된 나라 중 하나라는 오명이 있다”고 꼬집었다.
문체부 저작권범죄과학수사대는 “불법 유통물에 대한 유통 차단 행정조치를 일차적으로 시행했으며 계속 불법 유통이 확산될 경우 수사를 확대해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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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5일 국내 개봉 예정인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8개 부문 후보작 ‘콘클라베’. 디스테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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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극장에서 상영 중인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유력 후보작 ‘아노라’. 유니버설 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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