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서든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며 느껴지는 삶 속에서 얻어진 소소한 이야기로 내 작품의 주제를 삼는다.

"
원로 조각가 임송자(83)의 조각은 대부분 인물상이다.

손으로 흙을 붙이고 주물러가며 평범한 동시대 사람들의 형상을 빚은 그는 일상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의 모습과 감정을 기억하고자 했다.

작품은 학교 친구, 조카 등 주변 지인들에서 출발해 경직된 사회 규범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 재난 현장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사람들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로 뻗어나갔다.

때로는 억압과 불안이었고, 때로는 환희와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임송자 작가(전 중앙대 조소과 교수) 초대전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3월 2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우리 주변의 동시대 사람들 모습을 기록한 임 작가의 '컨템퍼러리(Conremporary)' 연작을 중심으로 임 작가가 특별히 기억하는 인물과 사건을 조형한 작품 2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3층 전시실에는 가톨릭 신자인 작가가 성서에 기반해 완성한 '십사처' 연작 등 성상들도 전시됐다.

전시작은 두 점의 돌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흙과 밀랍으로 제작한 테라코타와 브론즈 부조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손길을 살펴볼 수 있다.


임 작가는 1963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생업으로 교편생활을 병행하며 작가로 활동하다 1976년 다소 늦은 나이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동시대 양상에 집중하며 서양 미술을 수용했던 반면, 임 작가는 이탈리아 로마 미술 아카데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서양의 전통 조각 방식을 체득하는 데 집중했다.

다만 전통적인 조각은 표면을 매끈하게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임 작가는 손으로 흙을 붙인 거친 표면을 살린 채 작품을 완성하는 등 자기만의 예술 언어를 구축했다.


'컨템퍼러리 96'(1996). 김종영미술관

대표작인 '컨템퍼러리' 연작은 임 작가가 유학시절 이탈리아 북부 라벤나에서 단테를 기념해 열린 전시를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단테의 서사시 '신곡'을 읽고 작품으로 표현하는 게 학교 과제였는데,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작가는 고전이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미치며 여전히 유효한 이유에 중점을 두고 고민했다.

그렇게 여러 동료의 얼굴을 콜라주하듯 붙여 만든 '컨템퍼러리'(1978)는 당시 큰 호응을 얻었다.

1층과 2층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컨템퍼러리' 연작 역시 팔을 걷어붙인 아낙네, 쭈그려 앉은 남자아이 등 평범한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관객에게 친숙하게 말을 건다.

작품의 인물들은 항상 먼 곳을 응시한다.


임 작가는 60년 동안 한결같이 인체 조각, 그중에서도 소조 작업에 전념했다.

돌이나 나무를 끌과 정으로 깎아 만드는 조각과 달리 소조는 일일이 손으로 흙을 붙여가며 형상을 만든다.

전시장에서 만난 임 작가는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작업을 했다.

약체로 태어나 손에 힘이 없다 보니 표면이 거칠게 표현이 됐는데 그게 내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다"며 "모든 작품은 나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크기가 대부분 한 아름 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고만고만한 이유는 평생 큰 작업실을 얻어본 적이 없어서다.

안양의 한 고교 강사로 일할 때는 작은 방을 작업실로 썼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작업을 병행했다.

그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나무는 다시 살아나는데….' 어머님께서 봄에 새싹이 돋을 때 혼자 조용히 말씀하셨다.

서울대 교강사실에서 창밖의 봄 풍경을 바라보시며 '몇 번이나 이 봄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선생님들 말씀에서 '봄이 오는 소리'는 시작됐다.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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