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폭탄을 내일로 미뤘다”…전기료 가정용은 안 올린다는데, 기업이 봉?

기업용 요금 7차례 올릴 때
가정용은 5차례 인상에 그쳐
인상폭 kWh당 30원 더 올라

산업용 공급원가 가장 낮아
원가 회수율 100% 넘는데
이번에도 “기업만 더 내라”

[사진 =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해에 이어 1년만에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하는 ‘반쪽짜리’ 전기요금 인상안을 꺼내들었다.

전기요금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소비용인 가정용 전기요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정치적 수월성에만 근거해 인상안을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각국이 산업용 전기에 대해 소비용보다 2배 가량 낮은 요금을 적용해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정반대 행보를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23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국전력은 7차례에 걸쳐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반면 주택용 인상 횟수는 5차례에 그쳤다.

같은기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1kWh(키로와트시) 당 72.6원 올라 40.4원 오른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폭을 크게 웃돌았다.


전기요금은 주택용, 일반용(소상공인용), 산업용, 농업용 등으로 나뉜다.

정부는 통상 용도 구분없이 전기요금을 일괄 인상해 왔지만 지난 해 11월에 이어 이번에도 산업용 전기요금만 끌어올렸다.


정부는 그동안 공기업이 짊어지고 있었던 비용을 산업계가 분담하는 형태라고 주장했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가격이 올라간 부분을 한국가스공사한국전력에서 떠안고 있었다”며 “대기업이 국민경제에 빚을 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지났기 때문에 여건이 나아진 경제주체들이 공기업이 짊어지고 있던 부분을 환원한다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산정체계의 합리성과 형평성이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수요가 들쑥날쑥하고 공급원가도 많이 들어가는 가정용과 일반용, 농사용을 대신해 비교적 사용자들의 요금 저항이 덜한 산업용에 전기요금 인상이 집중됐다는 이유에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고압, 대용량으로 쓰고 연중 수요가 안정적인 산업용은 공급비용이 가장 낮고, 이미 원가 회수율도 100%를 넘은 상황”이라며 “공급원가가 많이 들고, 원가 회수율이 80% 남짓인 주택용과 일반용, 농업용을 올리고 산업용을 그대로 두는 것이 합리적인 인상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정부의 인상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에 한국은 산업용 전기가 싸고, 일반용, 주택용이 비싼 나라였는데 역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유럽과 미국같은 다른 나라들은 산업용을 주택용보다 낮게 유지하는데 힘을 쏟는 상황에서 우리만 산업용에 국한해 요금을 올리는 것은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특히 문제는 전력사용량이 많은 곳이 대부분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력 수출 대기업이라는 점에 있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전력 사용량 상위 20대 법인 중에서는 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 철강(현대제철·포스코), 석유화학(엘지화학·롯데케미칼), 정유(S-Oil·GS칼텍스) 등 주요 수출 업종 기업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날 경제단체들도 정부가 발표한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 인상안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대한상의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제조 원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해서 인상하는 것은 성장의 원천인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 명의 논평을 통해 “대기업에 대한 차등 인상으로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국내 산업의 경영활동이 더욱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고 소비자에 대한 가격신호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원가주의에 기반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시기에 전기료 정상화에 속도를 올려야 하는데, 정부가 자칫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국민 모두가 전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요금인상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맞는다”며 “다만 내후년부터는 전국단위 선거가 연이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때를 놓치면 앞으로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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