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윤 모씨(35)는 최근 두 살 난 딸이 열이 나자 오후 반차를 내고 딸을 동네 의원에 데려갔다.

윤씨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요즘도 아침이면 오픈런이다 해서 긴 줄을 서야 한다"며 "반차를 내면 그래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병원에 데려갈 수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반면 여섯 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 모씨(36)는 정보기술(IT) 중소기업에 다니던 최근까지 반차를 쓸 수 없었다.

B씨는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이 부족해 반차나 시차는 꿈도 못 꿨다"며 "최근 대기업으로 이직한 뒤 시차 활용까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저출생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는 연차 유연 활용 제도를 적극 확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으로 연차는 하루 단위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와 근로자 간 단체협약에 따라 반차(4시간), 반반차(2시간), 시차(1시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공무원은 이미 1997년부터 시차까지 연차를 쓸 수 있도록 했고 공공기관도 공무원 복무규정을 준용하며 대체로 연차 유연 활용 제도를 도입한 상태다.


민간 영역에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미 유연 제도가 정착됐다.

롯데그룹은 전 계열사에서 반차 제도를 도입했고 롯데건설·하이마트 등 일부 계열사는 반반차 제도까지 도입했다.

현대자동차는 2019년 반차 제도를 도입했으며 포스코는 반반차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롯데그룹 측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시간 유연성을 높이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통한 업무 몰입도 향상을 위해 연차 유연 활용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측도 "직원들의 유연한 휴가 사용을 통한 워라밸 제고,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해 반반차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유연제 도입이 저조하다.

인력 부족과 전산 시스템 미비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창업한 6명 규모 IT 기업 C사는 고심 끝에 시차 제도를 도입했다.

C사 대표는 "워낙 인원이 적은 회사이고 서로 업무를 백업해줄 수 없던 상황이라 초반 6개월 정도는 거의 사용을 못했다"며 "점차 서로 업무를 대체해줄 수 있게 되면서 시차 활용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준경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연차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식은 육아 환경 개선에 굉장히 중요하다"며 "기업도 이미지 제고와 직원 복지 향상을 위해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고 정부에서도 유도 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차 소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근로자들의 평균 연차 일수는 13.0일이고 이 중 4.3일을 미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차 미소진 이유가 "상급자 및 동료의 눈치"인 경우가 100~299인 중소기업에서는 40.3%에 달했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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