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매경 이코노미스트클럽 초청행사에서 열띤 강연을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지난해 국내 증시에 신규 상장된 기업은 119개, 상장폐지된 회사는 27개로 진입한 회사 대비 퇴출된 회사 비율이 22.7%에 그쳤다.

이는 미국 146.2%, 일본 72.7%에 비해 매우 낮다.

시장 수급 상황에 비해 많은 기업이 상장된 상태로, 좀비기업이 상장폐지되지 않고 남아 시장 신뢰를 해치는 것이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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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매경 이코노미스트클럽' 강연에서 "퇴출 기업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신규 상장 기업 비율이 한국 증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이사장은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가계의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신규 상장만 계속 많이 되면 시장이 과연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상장 기업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밸류업'을 위해선 결국 신규 상장 속도 조절과 신속한 퇴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기업공개(IPO) 심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철저한 상장 심사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건 좋지 않기 때문에 요건에 못 미치면 상장은 거절하는 게 맞고 심사 기간을 계속 끄는 것은 희망고문"이라고 말했다.

향후 상장 심사 절차가 과거보다 깐깐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또 '좀비기업'에 대해선 신속하고 적극적인 상장폐지가 오히려 소액주주를 보호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

정 이사장은 "상장폐지로 피해를 보는 소액주주를 고려하다 보면 상장폐지가 지연되고 신규 상장 기업에 비해 퇴출 기업 수가 너무 적다"면서 "좀비 상태로 상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면 주가 조작이 나타날 수 있고, 결국 소액투자자가 모든 피해를 최종적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퇴출시킬 기업을 빨리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장폐지 절차 합리화를 위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이고, 코스닥 상장사의 상장폐지 절차는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총선 결과 국회 여소야대 지형이 불가피해지면서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왔던 세제 인센티브를 통한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본질은 시장의 압력과 동료집단의 압력(peer pressure)을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인 가치 제고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세제 개편은 해주면 좋은 것이고 행동주의 펀드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도 밸류업 프로그램의 노력으로 당연히 논의될 수 있다"며 "다만 이런 것은 부차적이고 밸류업의 원래 취지는 기업을 자발적으로 투자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역시 10년간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통해 작년부터 증시에서 본격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며 "긴 호흡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발점이 되어 올 1분기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19조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거래소와 투자기관을 방문하며 한국 기업 밸류업 정책을 알린 정 이사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비중을 줄이면서 한국과 일본 비중을 늘리려고 하는데, 한국이 추가 상승 여력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면서 "한국도 일본과 같은 밸류업 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자신 있게 투자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전달받았다"고 했다.


한국거래소는 체계적인 상장 기업 밸류업 확산 지원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전담 추진 부서를 신설하고 상장 기업 공시 지원 및 컨설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다음달 중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제공하며 준비된 기업부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자율적으로 공표하도록 할 계획이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해 지수 연계 상장지수펀드(ETF)도 하반기 출시될 예정이다.


[김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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