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전 직원 2000여 명에게 'SK이노베이션을 다시 강한 회사로 만들어 갑시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메시지는 상당히 무거웠다.

지금의 상황을 '구조적 불황' '퍼펙트 스톰' '엄중한 국면'이라고 진단하고 구성원들에게 '생산성 향상' '불요불급한 비용 최소화' 등을 주문했다.


그는 "이로 인해 발생할 긴장감이 불편을 야기하겠지만 이를 감수하고 동참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이해를 구했다.


다만 여섯 단락에 걸친 메시지 어디에도 '비상경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위기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나 실행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비상경영이 아닌 혁신경영을 선포한 것"이라며 "비상경영 상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박 사장 메시지는 외부로도 전파됐다.


그러나 같은 시각, 내부적으로 SK이노베이션 계열사 임원들에게는 생산성 향상과 비용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전달됐다.

지침 내용을 구성원에게 잘 전파하라는 요청도 함께였다.

각 조직 임원들은 지침을 검토하고 전달 계획을 논의하느라 오전 시간을 할애했다.

겉으로는 선언적 메시지를 띄우면서 물밑에서는 강도 높은 조치가 이미 가동된 셈이다.

SK 임원들은 지금이 비상경영 상황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SK이노베이션이 처한 위기는 결코 숨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올해 1분기 연결 기준으로 SK이노베이션은 영업손실 446억원을 냈다.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 E&S와의 합병으로 반영된 영업이익 1931억원이 아니었다면 손실 폭은 더 컸을 것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등급인 Ba1으로 낮춘 상태다.


시장과 구성원 모두가 위기를 실감하고 있음에도 정작 경영진은 대외적으로 비상경영이라는 표현을 꺼리고 있다.

회사 전체가 위기 대응 모드에 들어갔지만 공식 메시지에서는 이를 부인하거나 감추려는 듯하다.

물론 비상경영 선포가 신용도 하락과 구성원이나 투자자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겠지만, 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용기와 책임이 신속히 신뢰를 회복하는 돌파구일 수도 있다.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텔레콤 해킹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고객 피해를 인정하고 그룹 차원의 반성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룹 총수가 고개를 숙인 날, 중간 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의 위기 대처에는 차이가 있었다.

'위기 대응'의 태도와 방식이 내부와 외부 그리고 위와 아래에서 엇갈리고 있다.


박 사장은 메일에서 "엄중한 사명감을 갖고 답을 찾아나가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강조한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무엇인지, SK이노베이션 경영진이 구체적으로 증명할 차례다.



[추동훈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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