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fine dining). 한 마디로 고급스러운 비싼 요리다.
재료나 셰프의 손맛 등이 최대한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코스요리에 와인까지 곁들이면 수십 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런 파인 다이닝 요리가 하늘 위 기내식으로 나온다면 승객들의 입은 분명 호사를 누리지 않을까. 최근
대한항공이 신규 기내식과 업그레이드 한 기내 서비스를 내놓아 관심을 받고 있다.
일단 기존의 클래식한 프렌치 코스 메뉴에서 탈피해 최근 외식업계 트렌드로 자리잡은 파인 다이닝을 기내에 도입했다.
국내 파인 다이닝 성지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와 협업해 독창적이면서도 한국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요리들을 선보였다.
2년여 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어우러진 기내식과 함께 기내식 서비스에 포함하는 테이블웨어 등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교체해 고객들이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을 전망이다.
또한
대한항공은 통합 항공사 출범에 앞서 일반석부터 상위 클래스까지 한식 메뉴를 보강하고 고객들의 선택지를 넓혔다.
특히
대한항공 기내식 대표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비빔밥 종류를 다양화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승객들도 한국의 식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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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부터 기내식 개발에 참여한 김세경 셰프, 데이빗 페이시 대한항공 기내식기판 및 라운지 부문 부사장 / 사진 = 대한항공 |
대한항공은 최근 새로운 기업 비전을 선포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항공사(To be the world’s most loved airline)’로 발돋움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기내식 고급화에도 힘썼다.
기내식과 기내 기물을 대폭 리뉴얼하며 고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사랑받는 기업이라는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흔히 기내식을 ‘항공 여행의 꽃’이라 부른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특별한 기억을 남겨서다.
대한항공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승객들이 고급 기내식의 전체적인 과정과 경험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 항공사답게 고전적인 레시피에 뿌리를 두면서도, 음식이 빛날 수 있는 깔끔하고 우아한 프레젠테이션을 연구‧개발했다.
그동안 클래식한 방식으로 서비스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우선 상위 클래스는 샐러드와 수프, 주요리, 후식으로 이어지던 정통 프렌치 코스를 탈피했다.
최근 연령대를 불문하고 인기를 얻고 있는 파인 다이닝을 기내에 도입한 것이 그 시작이다.
지상에서의 미식 경험을 하늘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한남동 ‘세스타(Cesta)’의 오너 셰프인 김세경 셰프와 협업했다.
일등석 기내식은 코스의 처음과 끝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마치 영화 예고편에 해당하는 ‘어뮤즈 부쉬(Amuse-Bouche‧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기내식에 도입했다.
셰프의 창의성을 담아 한 두입 크기의 정교한 요리로, 전체 코스를 제공하기에 앞서 승객을 환영하고자 준비했다.
이어 크랩 앤
레몬 바이트(Crab & Lemon Bite), 새우살을 곁들인 완두콩 퓨레(Pea Mousseline with Shrimp Salad), 전복을 곁들인 달걀 커스터드(Egg Custard with Abalone) 등 계절별로 다양한 구성의 어뮤즈 부쉬를 제공하고, 디쉬 중앙에는 캐비어를 배치해 고급스러운 첫 인상을 줬다.
주요리 또한 안심스테이크와 생선 등 전통적인 메뉴 외에 새로운 재료를 시도했다.
기내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양갈비와 송아지 안심, 오리가슴살을 메인 메뉴로 올렸다.
조리법도 다양화했다.
종이호일에 은대구와 채소를 넣어 증기로 가열하는 빠삐요트(En Papillote)를 선보였다.
김세경 셰프는 “많은 분들이 고급요리를 즐기게 되고 미식가화 돼 이런 음식들을 하늘에서도 즐길 수 있게끔 준비했다”며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처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옵션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식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눈이 즐거운 디저트를 제공한다.
한 입 크기의 쿠키나 케이크를 뜻하는 쁘티푸르(Petit Four)다.
정교한 비주얼과 섬세한 맛을 담아 식사 마지막까지 특별한 기억을 남길 수 있게 했다.
커피와 차를 곁들여 훌륭한 기내식 코스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인천 출발편에는 한 편의 예술작품 같은 컴포즈드 디저트(Composed Dessert)를 제공한다.
대한항공이 고객들에게 선사하고자 했던 ‘첫 인상과 마무리의 감동(first impression and final touch)’을 모두 구현했다.
파인 다이닝의 핵심은 ‘손님과의 교감’이다.
대한항공은 기내에서 승무원과 승객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요소를 추가했다.
이번 리뉴얼을 계기로 일등석 치즈‧과일과 요거트‧시리얼 제공 단계에 카트 서비스를 도입했다.
카트 위에 올려진 다양한 치즈와 가니쉬를 승객이 직접 보고 고름으로써 미식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모던하고 트렌디한 한식을 개발한 점도 눈에 띈다.
문어영양밥, 차돌박이비빔밥, 전복덮밥, 신선로 등 한식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주요리들이다.
이른바 ‘K-푸드’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추세를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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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박이 비빔밥 / 사진 = 대한항공 |
일반석은
대한항공의 대표 기내식인 비빔밥 종류를 늘리고, 한식과 양식 메뉴를 다양화해 승객들이 보다 많은 선택지를 누릴 수 있게 했다.
대한항공은 1997년 항공업계 최초로 일반석 기내식에 비빔밥을 도입해 대중화에 성공했고, 이듬해 IFCA(국제항공케이터링협회)로부터 ‘
머큐리상’을 받았다.
‘
머큐리상’은 기내 서비스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권위있는 상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리뉴얼에서 나물, 소고기와 함께 서비스했던 기존 비빔밥을 연어비빔밥 등으로 변주했다.
낙지제육덮밥 등 새로운 한식과 두부팟타이, 매운 가지볶음, 로제 파스타 등 최신 트렌드에 맞춘 메뉴도 선보인다.
기내식 모든 메뉴를 제철 음식 위주로 구성한 것도 눈에 띈다.
승객들이 사계절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프레스티지석에서는 여름철에 열무비빔밥을, 가을철에 버섯덮밥을 특선 메뉴로 제공한다.
또한 인천 출발편은 국내산 재료를 우선 사용한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상위 클래스 한식에 제공하는 밥은 우리나라 벼를 전통적인 교배 육종 방법으로 개발한 ‘백세미’를 사용하는데, 구수한 향과 쫄깃한 식감으로 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상위 클래스에 김치를 제공하게 된 점도 큰 변화다.
취항지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의 경우에는 해당 국가에서 기내식 재료를 수급해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해 각 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위주로 메뉴와 조리법을 개발했다.
재료가 없는 경우에 대비한 대체 레시피까지 마련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마쳤다.
항공기 내부라는 특수 환경에서 제공하는 요리인 만큼 메뉴와 서비스 방법 개발에도 수많은 요소들을 반영했다.
우선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지상의 레스토랑과 달리 승무원들이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조리 도구로 음식을 완성해야 한다.
이 같은 환경에서도 최대한 지상에서 먹는 것과 같은 퀄리티의 요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연구를 거듭했다.
원활한 서비스 진행을 위해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신메뉴 실습 교육과 인천공항 현장 교육도 진행했다.
지상보다 낮은 기압과 습도가 미각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다.
대한항공은 테스트 비행을 통해 기내식이 실제 서비스되는 경우를 수차례 시뮬레이션하며 맛과 품질을 보완했다.
이 과정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경영진이 직접 참여해 신규 메뉴 개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탰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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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 테이블웨어 베르나르도 식기, 크리스토플 커트러리, 리델 와인잔 / 사진 = 대한항공 |
기내식을 담을 식기와 승객들이 사용할 커트러리(Cutlery)에도 차별화를 시도했다.
단순히 유명한 브랜드가 아닌 해당 업계에서 깊은 역사를 지닌 최정상급 회사들과 협업했다.
대한항공 고객들이 손끝에서부터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디테일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일등석 식기는 프랑스의 베르나르도(Bernardaud) 브랜드를 선정했다.
베르나르도는 1863년 ‘도자기의 도시’로 불리는 프랑스 리모주(Limoges)에서 시작한 유서 깊은 브랜드다.
이곳의 고령토(kaolin)는 그 산지를 루이 15세가 왕실 소유물로 지정할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세계적인 미식 평가지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의 2~3스타 레스토랑에서도 베르나르도 제품을 사용한다.
베르나르도는 이번에
대한항공과 협업하며 일등석에 제공할 식기를 새로 개발했다.
한국의 ‘건괘(乾卦)’를 모티프 삼아 모던하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을 고안, 은은한 도자기 위에서 아름다운 한식과 요리가 돋보이도록 했다.
커트러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버웨어 브랜드 크리스토플(Christofle)과 손을 잡았다.
루이 16세 시대의 장식에서 영감을 얻은 크리스토플의 대표작 페흘르 컬렉션(Perles collection)을 기내로 들여와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페흘르 컬렉션 커트러리에 특정 회사 로고를 새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와인잔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델(Riedel) 제품에
대한항공의 새로운 태극문양을 새겼다.
프레스티지석 식기는 럭셔리 이탈리아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르마니/까사(Armani Casa)와 손을 잡았다.
소재와 내구성, 크기 등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 제작했다.
볼 그릇의 둥근 형태와 직사각형 접시의 조화가 눈을 사로잡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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