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매일경제TV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 'CEO인사이트' 12호에는 인터뷰 프로그램<이야기를 담다>의 촬영 후일담이 담겼습니다.<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김원경 PD('김 피디의 비하인드 컷')와 아나운서 이담('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김수진 작가('김 작가의 크레딧 쿠키') 등 제작진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촬영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CEO인사이트'를 통해 격주 단위로 공개됩니다.<이야기를 담다>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에 매일경제TV와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 가수 남진 편 전문.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가수 남진은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오빠'라는 애칭의 원조로 불린 한국 가요계의 전설이다.
'가슴 아프게', '둥지','님과 함께' 등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들을 남긴 그는, 데뷔 60주년에도 여전히 신곡을 발표하고 전국 투어 콘서트를 이어가며 팬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 김 작가의 크레딧 쿠키
# 아저씨가 될 수 없는 이유
목욕탕 거울을 보며 가슴에 힘주면 오빠, 배에 힘주면 아저씨.
덥다고 윗단추 풀면 오빠, 바지 걷으면 아저씨.
술 먹고 돈 걷으면 오빠, 서로 낸다고 하면 아저씨.
식당에서 물수건으로 손 닦으면 오빠, 얼굴 닦으면 아저씨.
오빠와 아저씨는 한 끗 차이 같지만 사실 느껴지는 괴리감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이다.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지나도록 평생 오빠로 살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힘든 걸 해낸 사람이 바로 가수 남진이다.
1965년 1집 앨범<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했을 때부터 2025년 60주년 전국 투어에 나선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오빠가 아닌 적이 없다.
"'황제나 가왕'이라는 대단한 수식어보다 '오빠'라는 수식어가 더 좋아요. 제가 데뷔한 이후 오빠 부대가 처음 생겼거든요."
가수 남진은 패션, 헤어스타일, 그리고 피부까지 이른바 오빠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
방송국을 찾은 그날도 그랬다.
고급스럽게 태닝 된 갈색 가죽 재킷은 '꾸안꾸'의 정석을 보여줬고, 살짝 살짝 비치는 회색 머리카락은 샌 머리가 아닌 헤어 브릿지로 보였으며, 눈가의 주름은 고된 세월의 흔적이라기보다 여유를 잃지 않았던 행복한 삶의 궤적으로 보였달까?
데뷔 60년을 맞은 가수 남진의 꿈과 데뷔 60년을 지켜본 팬의 꿈은 같다.
"떠날 때까지, 영원한 오빠이고 싶어요."
'라떼 시절'을 얘기해도 꼰대 같지 않고, 60년이 지나도 춤사위가 어색하지 않으며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에서 빛난다.
가수 남진이 대한민국에서 절대 아저씨가 될 수 없는 이유다.
◇ 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 은빛 정열의 사나이
지난해 2월 가수 나훈아의 은퇴 선언 소식을 뉴스로 전했다.
이 소식에 남진이 여러 번 소환됐다.
남진 대 나훈아.
전설의 라이벌로 불려왔기에 나훈아 은퇴 선언에 남진의 소식도 다들 궁금해했던 것이다.
나훈아와는 반대로 남진은 올해 데뷔 60주년 콘서트를 하며 오히려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며 팬들을 설레게 했다.
2025년의 남진과 나훈아의 행보는 그들의 음악 스타일과도 닮아있었다.
나훈아는 은퇴 소식으로 팬들에게 그리움을남겼다.
흔히들 얘기하는 나훈아의 음악처럼 서정적으로, 애틋한 정서를 남겼다.
그런가하면 여전히 흥을 돋워주고 파워풀한 무대를 보여주는 남진은 자신의 곡 '오빠 아직 살아있다'(2020)처럼,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 남진의 춤과 함께
인터뷰를 준비하며 남진 선생님의 여러 무대들을 찾아봤다.
야외 무대에서 셔츠 단추를 여러개 풀어헤치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은 여느 아이돌 못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 묵직한 보이스와 함께 보여주는 가벼운듯 현란한 스텝은 그야말로 유쾌 그 자체였다.
사람이 믿어지지 않는 장면을 보면 고개를 젓게 되는데… 내가 그랬다. 입을 떡 벌리고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남진 선생님이 방송에 나오면 다들 노래 한 소절을 부탁드리곤 한다.
남진 선생님의 노래, 얼마나 듣고 싶은가. 나도 그랬다.
그런데 난 춤 한 자락도 보고 싶었다.
남진의 스텝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저 그 스텝 가르쳐주세요" 하니, 인터뷰 끝나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선생님이랑 제가 춤을 다 춰보다니!"
퉁퉁다닥 쿵 따. 스텝을 가르쳐주시며, 발만 움직여선 안되고 상체도 같이 흔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 빈잔을 고독으로 채워
남진의 또 다른 무대에선 고독한 감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고독함을 공유하는 느낌이랄까.
빈잔의 무대에서 가끔 남진 선생님은, '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이 부분의 '아~' 를 정말 읖조리듯 내뱉으시기도 했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에서는 '빈 술잔' 후에 잔을 들고 있는 손 모양을 하고, 한 잔 툭 털어넣는 느낌으로 '톡' 소리를 내신다.
관객들과 정말 잔을 들고 같이 한 잔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설까. 남진은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가수로 평가되기도 한다.
# 남진에게 둥지를 틀어
다큐멘터리 영화<오빠 남진>의 출연자들이 남진의 마지막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참 인상 깊었다.
어떤 이는 "그 춤추고 다리 떨기는 90넘어서도 하시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마지막 무대는 없을 것 같다", "영원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중 음악의 선구자이자 우리 유행가요의 뿌리 같은 존재이기에.
많은 이들이 남진 선생님에게 이미 둥지를 틀었다.
데뷔 60년. 남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봐라, 지금부터 쇼타임이야. 알았제?"
◇ 김 피디의 비하인드컷
# 여든 살 소녀의 오빠, 시간을 녹이다
이른 봄날 저녁, 이담 아나운서와 함께 한국 대중문화의 산증인을 만났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철, 이현우, Y2K, 리아, 쥬얼리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아티스트 들을 배출한 신현빈 기획사 대표.
그와 함께한 시간은 연예인들의 에피소드로 가득차 웃음이 넘쳤다.
저녁 식사 자리가 무르익어가자 "누굴 섭외하고 싶어 이리 오셨나?" 물으신다.
망설임 없이 '남진'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그렇게 우리는 트로트의 전설을 스튜디오에 모시게 됐다.
아나운서와 함께한 첫 섭외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주차 등록 차량만 6대, 얼마나 많은 스텝이 오는 걸까?
녹화 한 시간 반 전, 남진 선생님과 그의 스텝들이 도착했다.
코디, 메이크업팀, 기획사의 매니저와 실장, 이사, 대표까지. 선생님과 함께 움직이는 그들은 대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그를 향한 존경과 애정이 묻어나는 듯해 더 조심스럽고 귀하게 다가왔다.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본다.
흥이 나셨는지 벌써 말씀이 맛깔나게 재미있다.
스텝들이 말린다. "선생님 여기서 녹화하시면 안 됩니다." 녹화가 기대됐다.
# 운칠기삼? 아니 삼칠운삼의 남진
팔순이 되신 어머니는 남진의 콘서트를 보고 "오빠 여전하시더라"고 말씀하셨다.
가수와 나이가 비슷하신 어머니는, 남진을 생각하며 소녀처럼 웃으셨다.
녹화 준비를 하며 60주년 기념 앨범<내 사랑 시>를 들어보았다.
첫 마디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그 노래에 나도 모르게“이 오빠 노래, 정말 좋네”라고 속삭였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요즘 트로트 열풍의 힘일까?
모녀에게 '오빠'라 불리는 가수 남진. 그의 일생을 돌아봤다.
첫 히트곡을 주셨던 김영광 작곡가와 허리춤을 가르쳐주신 KBS 안무가 이인범 선생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 경험이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됐다던 월남전.
그 베트남까지 파김치를 보내주셨던 어머니.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나훈아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순간은 행운이었고 감사하다 회고했다.
남진 : 삶이라는 게 파도에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런 굴곡이 있는데 그 어려웠을 때, 그때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다행히 운이 좋았던 것은 그때 꼭 좋은 분들을 만나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어요. 주위에 좋은 분들을 만나는 게 행운이고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수로서는 누구보다도 그런 복이 많은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게 좋은 사람을 만나 운이 좋았다 말하는 남진.
하지만 그에게 다가온 수많았던 불운을 행운으로 바꾼 건 바로 그 자신일 것이다.
"내가 죽으면 가장 먼저 달려올 후배" - 원로 가수 쟈니리
"무명의 나를 살린 은인이자 롤모델" - 가수 설운도
"남자가 봐도 정말 멋진 상남자" - 가수 박현빈 - 책<오빠 남진>中
그가 뿌린 진심의 씨앗, 주변인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역경을 기회로 승화시킨 것은 그의 내면의 힘이었다.
그가 그들을 어떻게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씨 뿌린 대로 거둔 것이리라.
어떤 '가수 남진'으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남진 : 팬들과 아주 가깝게, 정겹게, 즐겁게 지냈던 가수였다. '닿을 수 없는 스타보다 닿을 수 있는 오빠', '영원한 오빠' 그 한 마디가 그냥 가슴에 확 와닿지요. 가슴 속에 어떤 긍지라고 그럴까, 한 시대의 오빠라는 그런 칭호를 받고 활동을했었다는 긍지가 있어요. 영원한 오빠로 남고 싶다 생각하죠.
트로트의 전설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남진은 그저 소박한 '오빠'란 이름으로 남기를 원한다.
얼마 전 개봉한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도<오빠 남진>이다.
정식 팬클럽이 없던 시절, 남진은 국내 최초 첫 팬클럽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그야말로 오빠 부대가 처음 시작됐고 최초의 아이돌 가수였다.
그는 여전히 여든 살 소녀의 눈에도, '내 사랑 시'란 노래에 반해버린 젊은 PD의 감성에'영원한 오빠'다.
사랑의 시를 쓰다가 울었다 미완성 내 사랑이 아파서 책상에 던져진 코트를 걸치고 무작정 길 따라 거리에 나섰다. - 남진, 내 사랑 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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