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민자를 대상으로 전격적인 추방 작전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부자들을 상대로 미국 영주권 판매에 나선다.
기존 '투자이민(EB-5)' 비자를 폐지하는 대신 투자 기준을 대폭 상향한 새로운 비자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돈 많은 외국인을 선별해 미국 땅에서 살 권리를 매매하는 발상으로 15세기 유럽 가톨릭교회가 돈을 받고 발행했던 면죄부(면벌부)를 연상케 한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500만달러(약 72억원)에 미국 영주권을 주는 '골드카드(Gold Card)'를 조만간 판매한다고 밝혔다.
그는 "2주 정도가 지난 뒤 새 비자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 카드에 약 500만달러의 가격을 책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드카드가 매우 높은 수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민권의 취득 경로를 제공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미국 시민권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그는 "부자들이 이 카드를 사서 미국으로 올 것"이라며 "그들은 성공할 것이고 많은 세금을 납부하며 많은 사람을 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부유층이나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재능 있는 사람이 미국에 장기 체류할 수 있도록 골드카드를 사는 데 돈을 지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카드는 미국 영주권을 의미하는 '그린카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드카드를 두고 "그린카드와 비슷하지만 높은 수준의 세련됨(sophistication)을 갖췄다"고 표현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골드카드가 EB-5 비자 프로그램을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우리는 EB-5를 골드카드로 대체할 것인데 이것은 실제로는 그린카드 골드(버전)"라면서 "미국 정부에 500만달러를 내면 된다"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은 EB-5 비자 프로그램이 부유한 외국인 투자자가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했지만 '사기 행위'의 통로가 됐다는 인식도 내비쳤다.
그는 EB-5 비자에 대해 '가짜·사기' '싼값에 영주권을 갖는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1992년에 도입된 EB-5 비자는 지역에 따라 90만~180만달러(약 13억~26억원)를 투자할 경우 영주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2022년에 5년 기한으로 재연장됐다.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인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 시민이 지원할 수 있으며, 비자를 신청할 때 투자금이 적법하게 얻어졌는지도 증명해야 한다.
EB-5 비자에 대해 미국 정부는 연간 1만건이라는 한도를 설정해 운영해왔다.
국가별로는 전체 비자 발급의 7%만 할당하는 식이다.
러트닉 장관은 "우리는 (골드카드를) 100만장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100만장의 카드는 5조달러(약 7166조원)어치"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현재 부채는 35조달러다.
이것은 환상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골드카드는 EB-5 비자와 마찬가지로 미국 투자·검증 절차를 포함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재벌을 뜻하는 '올리가르히'도 골드카드를 구매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며 "아마도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몇 명을 알고 있다"며 "그들은 예전만큼 부자는 아니지만 500만달러를 지급할 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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