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발발 3년…반발 커지는 종전협상
미러, 2주내 양국 특사 회담
종전 위한 구체적 조건 논의
트럼프, 협상서 우크라 배제
이권 걸린 광물 협정만 종용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포기한
1938년 뮌헨회담 전철 우려
최악은 ‘위장된 평화’로 봉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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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년을 앞둔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링컨기념관에 시민들이 몰려나와 “우크라이나를 팔아먹지 마세요”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미·러 간 일방적인 종전협상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현지시간) 3년째를 맞는 가운데 종전을 위한 평화 협상이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주도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쟁 당사국으로 폐허 상태인 우크라이나가 협상 초기부터 배제되면서 강대국 간 이해 조정 과정에서 약소국이 소외되는 비애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대가로 러시아에 기울어진 협상 조건을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강요할 경우 종전협정이 유럽 대륙에 또 다른 전쟁을 부르는 ‘거짓 평화’로 귀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22일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과 인터뷰하면서 “양국(미국·러시아) 관계 정상화를 향해 나아갈 방안을 논의중이며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위험하고 매우 심각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면서 “향후 2주 내에 양국 특사가 만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양국 고위급 회담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미·러) 정상회담을 조직하기 위한 일이 시작됐다”며 “회담 성사를 위해 집중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랴브코프 차관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미·러 간 협상 시계가 빨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달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개시에 합의했고, 18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러 간 고위급 회담이 처음으로 열렸다.
양국이 회담에서 외교관계 정상화를 비롯해 북극, 에너지, 우주 분야 경제협력 복원을 추진하자 미국이 동맹인 유럽과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소외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러 양국 간 회담은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더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거래적 관점’을 들이밀고 있다.
유럽엔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고, 우크라이나에는 미국의 투자와 안전보장 제공을 대가로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제공하라고 압력을 넣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우크라이나와의 광물협정에 대해 “우리는 합의에 서명할 것이고 꽤 단기간에 이뤄지길 바란다”며 합의 체결이 “꽤 임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난 푸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동맹엔 가혹한 데 반해 러시아엔 우호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1일 우크라이나 전쟁 3주년을 맞아 러시아를 규탄하기 위한 유엔 결의안을 유럽과 별도로 제출했다.
미국의 결의안 초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 대신 ‘양국 간 분쟁’으로 표현됐다.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토 보전’도 언급하지 않으며 분쟁의 신속한 종식을 촉구한다고 기술했다.
미국이 북극 에너지 공동 개발 프로젝트 등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권을 노리고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매듭지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CNBC는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러시아의 서방 시장에 대한 접근이 다시 열리고 제재가 완화된다면 러시아엔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에 기울어진 협상에 나설 경우 유럽 대륙에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오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방안을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의 영토 20%가 러시아군에 넘어간 현 상황을 인정하는 뉘앙스다.
현재 국경선을 미국이 인정해버리면, 러시아에 ‘전쟁이 문제 해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셈이다.
그만큼 유럽도 극심한 안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미국에 의존하기보다 방위비 증액과 자체 핵공유 등 자력으로 안보를 보장하자는 논의가 활발해지는 배경이다.
앤드루 와이스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연구담당 부사장은 “냉전 시작 이후로 러시아는 미국을 유럽의 안보 기둥 역할에서 벗어나게 하는 꿈을 꿔왔다”며 “푸틴은 분명히 트럼프 행정부가 제공하는 어떤 기회든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철학자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유럽은 단결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며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2~5년 후에 우리는 발트 국가나 폴란드에서 새로운 러시아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러 간 일방 협상이 지속될 경우 1938년 9월 나치 독일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해 프랑스·영국·독일 정상 간 체결된 ‘뮌헨협정’과 유사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서방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주변국 침공을 노리는 독일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밀집 지역인 ‘수데테란트’ 지방을 내주는 조건으로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당시 힘이 약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협상 테이블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그러나 서방의 섣부른 ‘평화’는 나치 독일의 유럽 대륙 정복을 막지 못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는 협정 체결 6개월 만에 독일에 복속되며 지도에서 사라졌다.
카타리나 마테르노바 주우크라이나 유럽연합(EU) 대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나치에 양도하며 전쟁을 막으려 한 뮌헨협정이 어떻게 끝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면서 “당사자 없는 당사자에 대한 결정의 악명 높은 전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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