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관세 부과 계획을 내놓으면서 각국 대응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예고→발표→시행 유예' 패턴을 유지하면서 관세 위협을 극대화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주요국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 우선주의'로 대서양 동맹에 균열 위험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은 무역 수장이 나서 미국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다.
15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마로시 셰프초비치 무역·경제담당 집행위원이 17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래 장관 격인 EU 집행위원이 미국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그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와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와 회동할 계획이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무엇이든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미국 쪽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EU에 따르면 양측 간 상품·서비스 교역액은 2023년 기준 1조5000억유로(약 2272조원)로 전 세계의 30%,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43%를 차지한다.
EU는 또 전체 철강·알루미늄 생산량의 2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대미 수출국이다.
인도 정부의 트럼프 달래기도 진행형이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지난 13일자로 버번위스키 수입 관세를 기존 150%에서 100%로 내렸다.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증류주로, 미국 켄터키주 버번이 원산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3일 미국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패트릭 자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분석가는 "버번위스키 관세 인하로 미국이 주로 혜택을 볼 것"이라며 "이는 전략적 파트너 국가에 대한 관세를 조정하려는 인도 정부의 의지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비노드 기리 인도 양조협회장은 "버번위스키 관세를 내린 건 미국에 인도의 의도를 보여주고 관세 보복을 막으려는 선제 조치"라고 해석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트럼프 행정부 압박에 못 이겨 인텔의 반도체 공장 운영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날 블룸버그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이 최근 TSMC와 회의를 하면서 인텔 공장 운영권 인수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고 TSMC는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다만 TSMC가 투자하는 금액과 인텔의 제조사업을 어디까지 인수할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NYT는 TSMC가 인수할 공장이 오리건·애리조나·뉴멕시코주 등에 위치한 미국 내 공장으로 한정될 수도 있고 아일랜드와 이스라엘 등 해외 공장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치고 있다"며 비판해왔다.
이와 별도로 미국 브로드컴도 인텔의 사업 부문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브로드컴이 인텔의 칩 설계 및 마케팅 사업 부문을 면밀히 검토했고 자문단과 비공식적으로 입찰을 논의했지만, 인텔의 제조 부문에서 협력사를 찾는 경우에만 제안에 나설 방침이다.
아울러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상대로 상호 관세 등 관세 부과 조치가 일본에 적용되지 않도록 배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25%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나 맞춤형 상호 관세 부과 계획과 관련해 일본을 그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지난해 대미 상품 무역수지 흑자가 전년보다 18.1% 증가한 1235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베트남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
베트남 저비용항공사 비엣젯은 오는 7월 보잉 737 맥스 200대를 인도받기로 했다.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은 보잉 737 맥스 50대를 구매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부가가치세가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세금 체계라고 꼬집었다.
전 세계적으로 170개국 이상이 운영하는 부가가치세를 타깃으로 삼으면서 미국의 관세전쟁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특정 국가들이 제공하는 보조금에 대한 조항을 마련할 것"이라며 "일부 국가들이 미국 제품이 시장에 진입하는 걸 막기 위해 부과하는 비금전적 관세나 무역장벽에도 대응할 것이고 특정 국가들이 미국 기업의 운영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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